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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5장

by 누사두아 202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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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5장: 피의 대가, 칼날의 서약

 

'실족사(失足死)'.

 

그 세 글자가 얼음송곳이 되어 방 안의 모든 온기를 빨아들였다. 최민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벌떡 일어나 방문을 향해 뛰쳐나가려는 것을, 옆에 있던 박진이 간신히 붙잡았다.

 

"어딜 가려는 겐가!" "놓으십시오, 대감!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자는… 그자는 제게 형님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썩어빠진 세상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데 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최민준의 절규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그는 건장한 무인이었으나, 지금은 상처 입은 아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김약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린 듯,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피가 묻었다. 비록 칼을 든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신념과 계획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정의를 향한 걸음이 무고한 피를 불렀다는 끔찍한 현실이 그의 숨통을 짓눌렀다.

 

"이것이… 최씨 막부(崔氏 幕府)의 방식이다."

 

분노하는 최민준을 붙들고 있던 박진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냉소적이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저들은 논쟁하지 않는다. 토론하지도 않지. 그저… 지울 뿐이다. 마치 붓으로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먹을 갈아 그 위를 까맣게 덮어버리듯. 군사 막부의 철학이란 그런 것이다. 방해물은 제거하고, 반대자는 침묵시킨다. 자네 아비도 그리 당했고, 오늘 자네의 동료도 그리 당한 게야."

 

박진의 말은 최민준뿐만 아니라, 김약선의 심장에도 비수처럼 박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촛불에 일렁이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 손으로 붓을 잡아 법도를 세우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것인가? 자신의 이상이 또 다른 희생을 낳을 뿐이라면,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

김약선의 마음속에서 거대한 회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여기서 멈추면, 더 이상의 희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여기서 멈춘다면, 억울하게 죽어간 저 사람의 죽음은 그저 개죽음이 될 뿐이다. 최항의 공포 정치에 굴복하는 것이며, 이 땅의 정의는 영원히 최씨 막부의 칼날 아래 짓밟히게 될 것이다.

그때, 흐느끼던 최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는 분노를 넘어선, 차가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아니. 멈출 수 없습니다."

그가 김약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멈추는 것은, 형님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부마 나리, 부디… 이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제 이것은 단순히 군량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저 짐승들을 심판대로 끌어내는 싸움입니다."

 

최민준의 말에 김약선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흔들리던 눈빛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렇다. 멈출 수 없다. 물러서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 자신의 신념도, 죽어간 이의 넋도, 이 나라의 희미한 희망도.

김약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 한쪽에 고이 모셔둔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문신(文臣)의 신분이었지만, 호신을 위해 늘 곁에 두던 검이었다. 그는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그저 검집에 든 검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최민준과 박진, 그리고 장혁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내가 어리석었소. 붓만으로 칼과 싸울 수 있다고 믿었으니. 우리의 적은 좀도둑이 아니라, 살인자 집단이었소."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강철 같은 힘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방식을 바꿉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사람들을 지켜야 하고, 저들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합니다. 방패와 비수를 함께 써야 할 때입니다."

 

그는 충직한 집사 장혁을 바라보았다. "장혁. 자네에게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겨야겠다. 더 이상 전갈만 전해서는 안 된다. 자네가 가진 모든 연줄을 이용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들을 보호할 방책을 강구하라. 그들을 감시하는 자들을 역으로 감시하고, 위험의 징후가 보이면 즉시 피신시켜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방패'다."

장혁은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묵묵한 몸짓에는 목숨을 걸겠다는 서약이 담겨 있었다.

김약선은 다시 박진과 최민준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비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탁자 위에 펼쳐진 해서의 장부를 가리켰다.

"저들은 어둠 속에서 우리 사람을 죽였지만, 우리는 빛 속에서 저들을 말려 죽일 것이오. 저 장부에 적힌 도둑놈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것이오. 그 의심을 이용하는 겁니다."

 

박진이 그의 의도를 즉시 파악했다.

"…이간계(離間計)를 쓰시겠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습니다. 저들은 하나의 거대한 악(惡)이 아니라, 각자의 탐욕으로 뭉친 이익 집단일 뿐입니다. 그 연결고리 중 가장 약한 놈을 먼저 치는 겁니다."

 

김약선의 시선이 해서의 군량 횡령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한 관리의 이름 위에 멎었다. 탐욕스럽고 겁이 많기로 소문난 수비대장 조익겸(趙益謙)이었다.

 

"이 자를 첫 목표로 삼겠소. 이 자가 공포에 질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겁니다."

 

그는 장혁에게 다시 명했다.

"오늘 밤 안으로, 조익겸에게 익명의 서신을 보내라. 서신에는 다른 말은 쓰지 마라. 그저… 해서의 장부에서 '사라진 칠천 석'이라는 숫자와, '우물 속의 물귀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문장만 적어서 보내라."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것은 학자의 방식이 아니었다. 심리를 파고들어 상대를 옥죄는, 자객의 방식이었다. 김약선은 스스로의 변화를 느꼈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이상보다 더 차가운 현실의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피의 대가로 깨달은 것이다.

장혁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세 사람은 말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한배를 탄 동지이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공모자들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진실을 찾는 수사관이 아니었다. 거대한 최씨 군사 막부를 상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한 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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