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3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3장: 가시밭길의 첫걸음
진양부를 나서는 김약선의 등 뒤로 쏟아지던 최항의 시선은, 그의 살갗에 박힌 가시처럼 내내 따끔거렸다.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내내, 김약선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늙은 용은 그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한 달. 그 안에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모든 것은 최항의 차지다. 그의 피비린내 나는 방식이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고, 자신이 꿈꾸는 '법도의 정치'는 한낱 서생의 공허한 망상으로 치부될 터였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사립문을 들어서자, 아내 최씨 부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았다. 그녀는 남편의 굳은 얼굴만 보고도 모든 것을 짐작한 듯,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서방님."
둘만 남게 된 방 안에서, 최씨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표정을 뵈니, 필시 어려운 숙제를 받으셨군요. 그 사람이… 또 심기를 건드렸습니까?"
김약선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우와의 대화, 군량미 문제, 그리고 최항과의 대립과 한 달이라는 시한까지,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최씨 부인은, 모든 것을 듣고 난 뒤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서방님을 저울 위에 올리신 겁니다. 한쪽에는 서방님의 법도와 원칙을, 다른 한쪽에는 그 아이의 칼과 공포를 올려놓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재보시려는 게지요."
"알고 있소. 허나… 한 달은 너무 짧소. 이 일은 군부의 심장부를 건드리는 일이오. 수많은 무인들의 이권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을 텐데…"
"그러니 서방님 혼자서는 아니 되십니다." 최씨 부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 싸움은 진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납득하실 성과를 가져가야 하고, 동시에 그 아이의 방해를 뚫어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수족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이상주의적 면모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정치의 현실을 꿰뚫고 있었다.
"서방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면, 도방과 병부(兵部)는 물론이고 중앙의 수많은 관리들이 서방님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줄을 선 자들이지요. 그들의 눈을 피하고, 그들의 방해를 뚫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내의 말은 김약선의 머릿속을 환하게 밝혔다. 그렇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이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갈 동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누가 있단 말인가. 최우의 서슬 퍼런 권력 아래, 대부분의 인재들은 숨을 죽이고 있거나 이미 권력에 빌붙어 있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막막하구려."
김약선의 탄식에, 최씨 부인은 그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입니다. 맑은 물을 찾는 이들이 어찌 서방님 한 분뿐이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그 뜻을 숨기고 있을지언정, 서방님께서 깃발을 드시면 분명 함께할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아내의 격려에 김약선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서재로 돌아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낡은 종이 위에, 그는 붓을 들어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으나 그 강직함을 잃지 않은 자, 출세의 길은 막혔으나 그 능력이 출중한 자,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젊은 피.
다음 날 아침, 김약선의 밀사(密使)가 강화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날 밤, 김약선의 사랑채에는 세 사람이 모여 앉았다. 한 명은 최우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늙은 문신, 박진(朴瑨)이었다. 그는 일찍이 최씨 정권의 과오를 직언했다가 파직당한 후, 강화도 한편에서 낚시와 소일하며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었다. 다른 한 명은 하급 무관인 최민준(崔珉俊)이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대대로 지방 향리(鄕吏)를 지낸 가문 출신이었으나, 부친이 상관의 군량미 횡령 비리를 고발했다가 역으로 모함을 받아 집안이 풍비박산 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김약선의 충직한 집사(執事)인 마노(馬奴) 출신의 장혁(張赫)이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하여 김약선의 손발이 되어줄 인물이었다.
초는 희미하게 흔들렸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김약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밤늦게 모시게 된 연유는, 이미 들으셨을 줄 압니다. 진양공께서 내리신 명, 그리고… 제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입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늙은 선비 박진이었다.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비웃듯 말했다.
"허허. 대도(大盜)의 사위가 되시더니, 이제 좀도둑을 잡으라는 명을 받으셨는가? 재미있는 일이로군. 진양공이 과연 그걸 몰라서 자네에게 맡겼을까? 아니지. 그저 자네를 시험하고, 그 이복 처남과 경쟁시켜 누가 더 쓸모 있는 칼인지 보려는 게지. 그런데 부마, 자네는 칼이 아니라 붓이잖은가."
노인의 가시 돋친 말에 젊은 무관 최민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감! 부마 나리께 어찌 그런 무례한 말씀을!"
"무례하다니? 이게 지금 고려의 현실일세, 젊은이."
박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최민준을 쏘아보았다.
"자네 아비가 왜 죽었는가? 나라의 법도를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그 법도는 썩은 동아줄이었지. 지금 부마께서 하려는 일이 바로 그 썩은 동아줄을 다시 잡으려는 것과 같단 말일세."
"그렇기에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김약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은 진지했다.
"대감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허나, 썩었다고 버려두면 나라는 통째로 썩어 문드러질 뿐입니다. 누군가는 이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 합니다. 비록 제 손에 쥔 것이 칼이 아닌 붓이라도, 이 붓으로 법도를 다시 세우고 정의를 새길 수 있다면 기꺼이 이 가시밭길을 가려 합니다."
김약선의 진심 어린 말에, 냉소적이던 박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최민준은 이미 감격한 듯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부마 나리! 소장, 비록 힘은 미약하나 가문의 원한을 갚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소장은 향리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들이 장부를 조작하고 곡식을 빼돌리는 수법을 소상히 아뢰겠습니다."
최민준의 열정에 이어, 박진도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좋네. 이 늙은 몸,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속는 셈 치고 자네의 그 '법도'라는 것을 믿어보지. 장부를 대조하고 법률을 적용하여 죄를 묻는 일은 이 늙은이가 맡겠네."
마침내, 김약선의 첫 번째 팀이 꾸려지는 순간이었다. 세 사람은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박진이 법률과 감찰의 큰 틀을 잡고, 최민준이 실무적인 조사 방법과 예상되는 비리 유형을 정리했다. 장혁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정보 수집과 밀사 파견 등 비밀스러운 임무를 묵묵히 자처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당장 병부와 호부(戶部)에 협조를 요청하여, 문제가 되는 군현들의 3년간 조세 및 군량 장부를 모두 제출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증거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으니, 그것이 첫걸음입니다."
김약선이 결론을 내리며 회의를 마무리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고 김약선의 심복 하인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방금 진양부에서 전갈이 왔는데…"
"무슨 일이냐, 침착하게 말해보아라."
하인은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진양공의 명이 아니라… 최항 공자의 명이었습니다! 병부의 모든 군량 관련 서류는 국가 안위와 관련된 2급 군사기밀이므로, 외부 반출은 물론 열람조차 도방 최고 수뇌부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통보였습니다!"
순간, 방 안의 모든 소음이 멎었다. 김약선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박진의 미간이 깊게 패었고, 의욕에 넘치던 최민준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서렸다.
최항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최우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할 수는 없으니, '절차'와 '규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첫걸음부터 가로막은 것이다. 도방 최고 수뇌부의 허가란, 결국 최우의 재가를 다시 받으라는 뜻이었고 그 과정에서 최항은 얼마든지 시간을 끌며 훼방을 놓을 수 있었다.
김약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첫발을 떼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최항이 보내는 명백한 경고였다.
'이 싸움은, 네가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