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24장

누사두아 2025. 7. 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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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24장: 그림자 속 비수(匕首)

국왕의 교서(敎書)라는 강력한 방패를 얻은 김약선의 개혁은, 거침없는 파도처럼 구세력의 기득권을 향해 밀려 들어갔다. 경정도감(經正都監)의 현판이 걸린 관청은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았다. 늙은 학자 박진은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듯, 수십 년간 묵혀 있던 토지 대장과 노비 문서를 파헤쳤다. 그의 마른 손끝에서, 권세가들이 교묘하게 숨겨놓았던 불법과 탐욕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최민준이 이끄는 정예 병력의 호위 아래, 측량관들은 강화도 인근과 본토의 강남 지역부터 실태 조사에 나섰다. 왕의 명이 담긴 교서를 들고 나타난 그들 앞에서, 콧대 높은 권문세족들도, 거친 무장들도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들이 불법 점유한 토지를 내놓아야 했다. 환수된 토지는 국고로 귀속되거나, 눈물과 함께 땅을 빼앗겼던 원주인들에게 되돌아갔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도방의 주인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법이었다. 김약선의 명성과 백성들의 지지가 높아질수록,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던 구세력의 분노와 증오 또한 깊은 어둠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인내심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정치적인 수 싸움과 여론전으로는 더 이상 저 영악한 선비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의했다.


그날 밤, 박진은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 속에서 늦게 퇴청하고 있었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그의 마음은 수십 년 만에 느끼는 보람과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평생을 꿈꿔왔던,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이런 날을 다 보는구나."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자신을 호위하던 몇 안 되는 병사들을 먼저 돌려보냈다. 경정도감에서 그의 집까지는 지척이었고,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강화성 안에서 무슨 일이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밤공기가 시원했다. 그가 한적한 골목길로 막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진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서너 명의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좀도둑이나 왈패가 아니었다. 전신의 모든 기척을 죽이고, 오직 목표를 향한 살기만을 뿜어내는 전문 자객(刺客)들이었다.

 

"…누구냐!"

 

박진이 경악하여 소리치기도 전에, 그들의 손에 들린 비수(匕首)가 달빛을 번뜩이며 그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늙은 학자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챙!' '카캉!'

 

살이 찢기는 소리 대신, 날카로운 쇳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박진이 놀라 눈을 뜨자, 그의 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최민준이었다. 그와 그의 친위대 몇 명이, 어느새 나타나 자객들의 칼을 막아서고 있었다.

 

"대감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 역적 놈들!"

 

최민준은 며칠간 구세력의 움직임이 너무 조용한 것을 수상히 여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진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중이었다. 그의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최민준과 그의 병사들은 정예였지만, 자객들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오직 죽이기 위한, 치명적이고 간결한 검술이 좁은 골목길에서 어지럽게 펼쳐졌다. 최민준은 박진을 등 뒤로 보호하며 필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그의 팔에 자객의 비수가 스쳐 지나가며 붉은 피가 솟구쳤다.

자객들은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방의 정규군과 맞닥뜨리게 되자 당황했다. 암살이 실패했음을 깨달은 그들은, 서로에게 눈짓을 보내더니 연기처럼 흩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최민준의 외침에, 그의 부하 하나가 도망치는 자객의 다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창을 던졌다. 자객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즉시 병사들에게 제압당했다. 나머지 자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김약선은 보고를 받자마자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왔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박진과, 피 흘리는 팔을 부여잡고 서 있는 최민준. 그리고 포박당한 채 입에 재갈을 물린 자객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약선의 얼굴이 분노로 차갑게 굳어졌다.

 

"대감,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자네는…!" "소장은 괜찮습니다, 나리. 대감께서 무사하신 것이 다행입니다."

 

김약선은 제압당한 자객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자객의 입에 물린 재갈을 거칠게 뽑아냈다.

"누가 보냈느냐."

 

자객은 독이 오른 눈으로 김약선을 노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김약선은 그의 턱을 억지로 벌려 입안을 확인했다. 혀 밑에 숨겨둔 자결용 독약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장혁에게 명했다.

 

"이놈을 안전가옥으로 끌고 가라. 살아서는 그 입을 열지 않겠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서라도, 그 배후를 알아내야겠다."

 

그는 다시 쓰러진 자객들 중 하나를 살폈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 그 안에는 돈 대신, 특이한 매듭으로 묶인 붉은 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송길유 장군 휘하의 핵심 병사들만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신표(信標)였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정치적 수 싸움에서 패배한 구세력이, 마침내 가장 비열하고 잔혹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칼끝이 이제는 김약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겨누기 시작했다.

김약선은 피가 묻은 최민준의 팔과, 공포에 질린 박진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차가운 분노가 용암처럼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왕의 방패는 정책을 보호할 수는 있었지만, 어둠 속 비수로부터 동료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그는 깨달았다. 독사의 속삭임은, 이제 피를 부르는 비수(匕首)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비수를 부러뜨리기 위해서는, 이제 그 역시 자비 없는 철퇴를 휘둘러야만 했다. 뱀의 소굴을 찾아내, 그 뿌리까지 모두 불태워버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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