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개척시대를 대표하는 무법자 집단 와일드 번치의 리더 부치 캐시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부치 캐시디는 1866년 4월 13일 유타주 비버에서 몰몬교도 가정에서 로버트 로이 파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13명의 자녀 중 장남이었다.
어렸을 때 그는 목장과 소몰이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이는 나중에 이 지역의 지리에 대한 지식에 기여하고 법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범죄의 시작:
캐시디가 범죄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후반부터 소와 말을 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다양한 범죄 집단과 연계되어 숙련된 말 도둑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90년대 초 캐시디는 와일드 번치라는 갱단을 결성했다. 이 갱단은 기차와 은행 강도를 일삼는 무법자 그룹이었다.
와일드 번치:
홀인더월 갱이라고도 알려진 와일드 번치는 미국 서부에서 활동했으며 선댄스 키드(해리 알론조 롱가보), 하비 로건(키드 커리) 등의 멤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갱단은 법 집행을 피하기 위해 와이오밍의 홀인더월 패스 같은 험준한 지형에 외딴 은신처를 이용했다.
이들은 주로 기차와 은행을 노리는 대담한 강도로 범죄 활동을 벌였으며, 체포를 피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악명을 떨쳤다.
열차 강도와 탈주:
와일드 번치의 가장 유명한 강도 사건 중 하나는 1899년 유니언 퍼시픽 오버랜드 플라이어 열차 강도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이들은 상당한 돈을 챙기게 된다.
와일드 번치 멤버들은 미국 땅에 대한 지식, 마술 기술, 변장술 등을 이용해 법망을 피했다.
남미로 도피: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캐시디, 선댄스 키드, 에타 플레이스(선댄스 키드의 동료)는 1901년 체포를 피해 남미로 도망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들은 처음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후 볼리비아로 이주하여 범죄 활동을 계속하면서 소를 키우는 목축업을 통해 합법적인 삶을 살려고 했다.
죽음과 유산:
부치 캐시디의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그와 선댄스 키드는 1908년 볼리비아 군인들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그들의 죽음은 와일드 웨스트의 한 시대와 악명높은 범죄조직의 최후였다.
논란과 논쟁:
캐시디의 죽음에 대한 대중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존하여 다른 신분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와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론을 계속 탐구하며 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일조하고 있다.
부치 캐시디의 재치, 교활함, 험준한 지형에 대한 친숙함의 조합으로 와일드 번치 갱단을 이끌며 대담한 강도 행각을 벌이고 체포를 피하는 등 상징적인 무법자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과 전설이 혼합된 채로 남아 있으며, 와일드 웨스트와 그 시대를 정의한 인물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여전히 회자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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