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성 완벽 가이드: 천년의 역사를 걷는 법

동화 속 풍경 너머의 이야기
블타바 강 너머 언덕 위에 왕관처럼 자리 잡은 프라하 성의 실루엣은 수 세기 동안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상징적인 풍경입니다.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 모습에 감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프라하 성의 진정한 마법은 그 아름다운 외관 너머, 천 년의 역사가 모든 돌과 첨탑에 새겨져 있는 깊은 이야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성벽 안에 성당, 궁전, 거리, 정원이 공존하는 하나의 작은 도시와도 같습니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곽 복합체라는 타이틀은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하지만 ,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프라하 성이 체코 민족의 역사적, 정신적 심장부라는 점입니다. 이곳은 왕과 황제가 제국을 통치하고, 성인들이 순교하고,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반란이 시작되고,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한, 체코의 운명이 결정된 살아있는 무대입니다.
이 가이드는 방문객들을 그저 표면적인 관광에서 벗어나 성의 깊은 속살로 안내할 것입니다. 단순히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넘어 ‘왜 그것이 중요한가’를 이해하도록 돕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프라하 성의 복잡한 역사와 건축, 그리고 효율적인 방문 전략을 총망라하여, 방문객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더하는 완벽한 동반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천 년의 시간을 걷다: 프라하 성의 역사 파노라마
프라하 성의 역사는 체코 민족의 역사 그 자체와 같습니다.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은 곧 왕, 황제, 성인, 반란군, 그리고 대통령의 시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과도 같습니다. 각 시대는 성에 자신만의 건축적 흔적을 남겼고, 이 흔적들은 체코의 영광과 시련, 그리고 부활의 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신화적 기원과 로마네스크의 초석 (9세기 - 12세기)
프라하 성의 이야기는 전설과 함께 시작됩니다. 체코 민족의 시조모로 여겨지는 리부셰 공주가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그 영광이 별에 닿을 위대한 도시가 보인다"는 예언과 함께 성을 지으라고 명했다는 이야기는 이곳의 신화적 기원을 말해줍니다.
역사적으로 프라하 성의 기원은 9세기 프르셰미슬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기 870년, 성모 마리아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 10세기에는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성 이르지 바실리카가, 11세기에는 구왕궁의 전신이 되는 석조 궁전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건축은 잦은 분쟁과 권력 강화를 반영하듯,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을 특징으로 하는 견고하고 방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보헤미아 공국이 신성 로마 제국과의 관계 속에서 국가의 기틀을 다지던 시대상을 건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황금시대와 고딕의 야망 (13세기 - 14세기)
프라하 성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14세기, 카를 4세의 통치기였습니다. 프라하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를 넘어 신성 로마 제국의 심장부로 격상되면서, 프라하 성은 처음으로 황제의 거주지이자 유럽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러한 위상의 변화는 새로운 건축적 언어를 요구했습니다. 카를 4세는 프랑스 대성당을 모델로 삼아 성 비투스 대성당의 대대적인 증축을 고딕 양식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거대한 창문, 그리고 빛으로 가득 찬 내부는 단순한 건축 양식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프라하의 권위와 신성함을 유럽 전역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문화적 야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구왕궁 역시 이 시기에 화려하게 개축되며 황제의 위엄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갈등, 화재,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르네상스 (15세기 - 18세기)
카를 4세의 황금시대 이후, 프라하 성은 격동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15세기 초,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후스 전쟁으로 성은 한때 후스파 군대의 거점이 되었고, 대성당 건설과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541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성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는 재앙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은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헤미아의 왕위를 계승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으로 성을 재건했습니다. 앤 여왕의 여름 궁전과 같은 새로운 궁전과 정원이 들어서면서, 성은 중세의 요새에서 점차 우아한 궁정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프라하를 다시 제국의 수도로 삼은 루돌프 2세 황제 시대에 성은 예술과 과학, 연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 1618년에는 구왕궁의 창문에서 가톨릭 관료들이 내던져진 '프라하 창밖 투척 사건'이 발생하며 유럽 대륙을 휩쓴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통해 성에 바로크 양식의 통일성을 부여했습니다. 오늘날 방문객들이 마주하는 성의 정문에 세워진 거대한 '타이탄의 전투' 조각상은 바로 이 시기, 보헤미아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강력한 권위를 상징하는 조형물입니다. 이처럼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도입은 단순히 건축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보헤미아가 합스부르크라는 거대한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시각적 증거였습니다.
현대사의 중심에서: 다시 태어난 국가의 상징
20세기에 들어 프라하 성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새로운 국가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1918년 독립 후, 초대 대통령 토마시 마사리크는 성을 대통령 관저로 삼고,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현대 국가의 중심지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개보수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성은 나치 독일의 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집무실이 되는 어두운 역사를 겪었습니다. 하이드리히가 보헤미아 왕관을 몰래 써본 후 저주를 받아 암살당했다는 전설은 당시 체코인들의 저항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공산주의 정권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은 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블라디슬라프 홀에서 취임식을 거행하며 프라하 성은 다시 한번 자유 체코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프라하 성은 체코 대통령의 공식 관저이자 집무실로 사용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의 보석들: 건축으로 읽는 프라하
프라하 성을 방문하는 것은 거대한 야외 건축 박물관을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쪽 정문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는 추천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각기 다른 시대와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장엄한 입구와 안뜰
프라하 성의 정문인 마티아스 문에 들어서면, 양쪽 기둥 위에서 거인족 타이탄을 제압하는 신들의 조각상이 방문객을 압도합니다. 이는 18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헤미아의 반란을 진압한 후, 다시는 저항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세운 것입니다. 이 문을 지나 제1정원을 거쳐 제2정원으로 들어서면 성 십자가 예배당과 함께 티켓 판매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성의 내부 탐험이 시작됩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 민족의 영혼이 깃든 곳

제3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성 비투스 대성당의 장엄한 모습에 누구나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대성당은 단순히 거대한 교회가 아니라 체코의 영적 중심지이자 국가 그 자체의 상징입니다.
대성당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930년 바츨라프 1세가 지은 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원형 성당에서 시작하여, 14세기 카를 4세 때 본격적인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었고, 수많은 전쟁과 정치적 혼란으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마침내 192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무려 1,000년에 걸쳐 완성된 이 건축물은 체코 민족의 끈기와 염원이 담긴 결정체입니다.
대성당의 건축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방문의 깊이를 더합니다.
- 고딕 양식의 정수: 높이 33m에 달하는 아치형 천장, 육중한 석조 벽의 무게를 분산시켜 거대한 창문을 가능하게 한 공중부벽(플라잉 버트레스), 그리고 뾰족한 아치는 방문객의 시선을 하늘로 이끌며 신의 영광을 느끼게 합니다.
- 빛의 예술, 스테인드글라스: 대성당의 가장 큰 볼거리는 내부를 신비로운 빛으로 채우는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체코의 국민 화가 알폰스 무하가 20세기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색유리 조각 조합 방식이 아닌, 통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려 구워내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여 아르누보 양식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창을 완성했습니다. 서쪽 입구 위편의 거대한 장미의 창은 약 27,000개의 유리 조각으로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거 글을 읽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전달했던 '가난한 자의 성경' 역할을 했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곳에서 현대 예술과 만나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 성 바츨라프 예배당: 이곳은 대성당의 심장부로, 체코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의 유해가 안치된 곳입니다. 벽면은 1,300개가 넘는 준보석과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그 신성함을 더합니다.
- 성 얀 네포무츠키의 무덤: 약 2톤의 순은으로 제작된 이 화려한 무덤은 또 다른 순교 성인인 얀 네포무츠키를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바츨라프 4세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왕에게 발설하기를 거부하다가 카를교 아래 블타바 강에 던져져 순교한 인물로, 그의 무덤은 신념을 지킨 성직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왕가의 안식처: 대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를 비롯한 보헤미아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이 잠들어 있는 왕실 묘소가 있어, 이곳이 왕가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던 역사적 장소임을 상기시킵니다.
- 남쪽 탑 전망대: 체력에 자신 있는 방문객이라면 287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 남쪽 탑 전망대에 도전해 볼 만합니다. 프라하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선사합니다.
구왕궁: 역사가 창문 밖으로 던져진 곳
성 비투스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구왕궁은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유럽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의 무대입니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보헤미아 왕들의 거처였던 이곳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여러 시대의 건축 양식이 층층이 쌓여 있는 역사의 단면과도 같습니다.
왕궁의 핵심은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블라디슬라프 홀입니다. 정교하게 얽힌 갈비뼈 모양의 둥근 천장이 인상적인 이 거대한 홀은 과거 왕실의 연회나 대관식, 심지어 기마 시합까지 열렸던 다목적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바로 '프라하 창밖 투척 사건'이 일어난 방입니다. 1618년, 가톨릭을 강요하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반발한 개신교 귀족들이 왕의 대리인들을 바로 이 방의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 사건은 30년간 유럽을 피로 물들인 종교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부 방문객들은 장식이 거의 없는 내부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 이 평범해 보이는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적 무게를 이해한다면 구왕궁 방문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로마네스크의 소박한 위엄
구왕궁을 지나면 선명한 붉은색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정면)가 인상적인 성 이르지 바실리카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외관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내부는 프라하 성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20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프라하 성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 건축물입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바로 옆 성 비투스 대성당의 화려함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소박하고도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두꺼운 돌벽, 둥근 아치, 그리고 단순한 구조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경건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곳에는 보헤미아를 건국한 프르셰미슬 왕조 초기 군주들의 묘와 체코 최초의 여성 순교자인 성 루드밀라가 잠들어 있습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와 성 비투스 대성당의 극적인 대비는 방문객에게 건축으로 쓰인 역사책을 읽는 듯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성 이르지의 견고하고 땅에 발 딛은 듯한 로마네스크 양식은 초기 왕국의 시대를, 성 비투스의 하늘로 솟구치는 고딕 양식은 제국의 수도로서의 영광과 권위를 각각 웅변하고 있습니다. 두 교회를 연이어 방문하는 것은 보헤미아 왕국이 걸어온 발전의 궤적을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황금소로: 연금술사와 카프카의 작은 골목
성 이르지 바실리카 뒤편으로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늘어선 황금소로가 나타납니다. 루돌프 2세 시절 연금술사들이 황금을 만들던 곳이라는 전설 때문에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 실제로는 16세기에 성을 지키던 사수들과 금세공인, 장인들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이 좁은 골목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데에는 20세기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22번지의 파란 집에 작업실을 얻어 소설을 집필했고, 이곳은 오늘날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현재 집 내부는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전시 공간이나 기념품 가게로 꾸며져 있습니다. 골목 끝에는 중세 시대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달리보르카 탑이 있으며, 이곳에 처음 수감되었던 기사 달리보르의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완벽한 방문을 위한 실용 가이드
프라하 성의 천년 역사를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계획이 필수적입니다. 교통편부터 티켓 구매, 동선 계획까지, 시간을 절약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줄 실용적인 정보들을 총정리했습니다.
성으로 가는 길: 여정의 시작을 선택하다
프라하 성에 도착하는 방법은 단순한 이동 수단의 선택이 아니라, 전체 방문 경험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각 경로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와 경험을 제공합니다.
방법 | 노선/경로 | 정류장 | 연결 입구 | 장점 | 단점 |
트램 (가장 추천) | 22번 | Pražský hrad | 제2정원 입구 | 가장 쉽고 빠른 접근. 내리자마자 5분 거리. |
가장 많은 관광객이 이용하는 경로. |
22번 | Pohořelec | 제1정원 정문 | 언덕 위에서 내려오며 흐라드차니 광장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입장 가능. |
정문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야 함. | |
22번 | Královský letohrádek | 왕실 정원 입구 | 여름 시즌에만 가능. 아름다운 왕실 정원을 통과하는 낭만적인 경로. |
성 중심부까지 15-20분 소요. | |
지하철 | A선 (초록색) | Malostranská | 동쪽 입구 (Na Opyši) | 지하철로 연결되어 접근성 좋음. | 정류장에서 구 성곽 계단을 따라 상당한 오르막길을 걸어야 함. |
도보 | 카를교 또는 말라스트라나 광장에서 출발 | 신/구 성곽 계단 | 정문 또는 동쪽 입구 | 프라하의 아름다운 거리를 느끼며 성에 다가가는 극적인 경험. 성취감. |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상당한 체력 소모. |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에 대한 첫인상이 달라집니다. 극적이고 웅장한 등장을 원한다면 도보나 지하철을 이용해 계단을 오르는 것이 좋고, 시간과 체력을 아끼고 싶다면 트램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티켓, 투어, 그리고 운영 시간
복잡한 프라하 성의 티켓과 운영 시간을 미리 숙지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아래 표는 방문 계획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요약한 것입니다.
항목 | 하절기 (4월-10월) | 동절기 (11월-3월) | 가격 (성인/학생/가족) | 포함 내역 및 비고 |
성곽 단지 | 06:00 – 22:00 | 06:00 – 22:00 | 무료 | 성 내부의 안뜰과 길은 티켓 없이 자유롭게 통행 가능. |
역사적 건물 | 09:00 – 17:00 | 09:00 – 16:00 | 티켓 필요 | 성당, 구왕궁 등 주요 건물 내부 입장 시간. |
프라하 성 기본 서킷 | 위와 동일 | 위와 동일 | 450 CZK / 300 CZK / 950 CZK | 구왕궁, 성 이르지 바실리카, 황금소로, 성 비투스 대성당 포함. 대부분의 방문객에게 가장 적합. |
성 비투스 남쪽 탑 | 10:00 – 18:00 | 10:00 – 17:00 | 200 CZK (별도 구매) | 전망대 입장권. 기본 서킷에 미포함. 계단만 이용 가능. |
황금소로 | 09:00 – 17:00 | 09:00 – 16:00 | 기본 서킷에 포함 | 역사적 건물 폐장 시간 이후에는 무료로 입장 가능 (약 17시 이후, 현장 확인 필요). |
- 티켓 구매: 티켓은 성 내부 제2정원과 제3정원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제2정원 매표소가 덜 붐비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식 웹사이트나 신뢰할 수 있는 판매처를 통해 온라인으로 기본 서킷 티켓을 예매하면 티켓 구매 줄은 피할 수 있지만, 보안 검색 줄은 똑같이 서야 합니다.
- 오디오 가이드: 제3정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한국어를 포함한 다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인파를 피하는 전략
- 타이밍이 핵심: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적 건물이 문을 여는 오전 9시 직전이나, 관람객이 빠져나가는 오후 4시 이후에 방문하면 훨씬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 최적의 동선: 서쪽 정문(흐라드차니 광장)으로 입장해 성 비투스 대성당과 구왕궁을 먼저 보고, 성 이르지 바실리카를 거쳐 황금소로를 마지막으로 본 뒤 동쪽 문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 비밀의 입구: 여름 시즌(4월-9월)에만 열리는 숨겨진 입구가 있습니다. 트램 22, 23번을 타고 'Pražský hrad' 다음 정류장인 'Brusnice'에 내리세요. 길을 건너 U Brusnice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왼편에 거의 줄이 없는 보안 검색대가 있는 문이 나옵니다. 이 문은 사슴 해자(Jeleni prikop)를 통해 성의 측면으로 연결됩니다.
근위병 교대식: 놓칠 수 없는 볼거리
프라하 성 방문의 또 다른 즐거움은 근위병 교대식입니다.
- 매시 정각 교대식: 성의 각 출입문에서는 매시 정각에 간단한 보초 교대식이 열립니다.
- 정오 공식 교대식: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공식 교대식은 매일 낮 12시에 제1정원에서 팡파르와 깃발 교환 행사와 함께 진행됩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근위병 교대식
재충전의 시간: 성 안팎의 맛집
넓은 성을 둘러보다 보면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목적과 예산에 맞는 몇 군데의 추천 식당과 카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최고의 전망과 함께하는 커피: 롭코비츠 궁전 카페(Lobkowicz Palace Café). 성 내부에 위치하며, 프라하 시내를 조망하는 환상적인 테라스가 있습니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전망 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 분위기 있는 체코 전통 요리: 쿠힌(Kuchyň). 성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전통 체코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와 멋진 전망을 자랑합니다.
- 조용하고 아늑한 휴식처: 카바르나 노비 스베트(Kavárna Nový Svět). 성 근처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조용한 골목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카페입니다. 인파를 피해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 특별한 저녁 식사: 테라사 우 즐라테 스투드네(Terasa U Zlaté studně). 프라하 최고의 루프탑 레스토랑 중 하나로, 성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특별한 저녁 식사 장소로 손색이 없습니다.
천 년의 역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다
리부셰 공주의 예언에서 시작하여 벨벳 혁명의 함성으로 이어진 프라하 성의 천 년 서사는 로마네스크의 소박함에서 고딕의 장엄함으로, 르네상스의 우아함을 거쳐 바로크의 화려함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왔습니다. 이 성의 안뜰과 복도를 걷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이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더하며, 성의 살아있는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경험입니다.
이 가이드가 제공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 방문객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프라하 성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발견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성벽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읽어내고, 건축물이 속삭이는 과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잊지 못할 자신만의 프라하 성 연대기를 완성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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