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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26장

by 누사두아 202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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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26장: 늙은 호랑이의 최후

김약선의 철권(鐵拳)은 신속하고 무자비했다. 그가 휘두른 ‘왕의 방패’와 ‘그림자 속 비수’는 완벽한 협공을 이루며, 구세력의 숨통을 단단히 옭아맸다. 강화의 어두운 뒷골목에서는 송길유의 심복들이 ‘역도들 간의 내분’이라는 이름 아래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대낮의 저잣거리에는 송길유를 왕명을 거역한 대역죄인으로 규정하는 국왕의 교서가 나붙었다. 공포와 명분. 김약선은 그 두 개의 칼날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세력의 뿌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강화의 모든 이들은 숨을 죽였다. 온화한 미소를 짓던 선비의 얼굴 뒤에, 최우의 냉혹함과 최항의 잔인함을 합친 것보다 더 무서운 결단력이 숨어 있음을 모두가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남쪽의 섬, 진도(珍島). 송길유는 강화에서 온 전령선이 도착하기 전, 자신과 연이 닿아있던 상인의 배를 통해 먼저 끔찍한 소식을 접했다. 강화에 남겨두었던 자신의 심복들이 모두 죽었고, 자신이 국왕의 교서에 의해 역도로 공표되었으며, 대규모 삼별초 함대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출발했다는 절망적인 보고였다.

 

“크… 크하하하!”

 

송길유는 보고를 듣고 실성한 듯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분노와 허탈함,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는 늙은 맹수의 마지막 포효와도 같았다.

 

“선비 놈, 영악한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독한 놈일 줄이야! 왕의 허수아비를 방패 삼아 내 목에 칼을 들이대? 이 늙은 호랑이를, 일개 종이쪽지로 잡으려 들어?”

 

그의 부하 장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장군! 지금이라도 피하셔야 합니다! 이곳의 군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어딜 피한단 말이냐!” 송길유가 버럭 소리쳤다.

“이 강토 밖은 모두 몽고 놈들의 세상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왕명을 거역한 역도가 되어 쫓기는 신세지. 하늘 아래, 이제 내가 발붙일 곳은 없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졌음을 깨달았다. 김약선은 그를 단순히 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었다. ‘왕의 적’으로 만들어, 도방 내에서 그를 옹호할 아주 작은 명분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그는 체념한 듯, 평생을 입어온 무거운 갑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끼는 칼을 허리에 찼다. 그는 도망가지 않을 터였다. 다만, 저 애송이 선비 놈의 손에 잡혀 개처럼 끌려가는 치욕을 당할 생각 또한 없었다. 그에게는 그만의 마지막 방식이 있었다.


며칠 뒤, 박서가 이끄는 삼별초의 대함대가 위용을 과시하며 진도의 앞바다에 도착했다. 칠흑 같은 갑옷을 입은 삼별초 병사들이 해안에 도열하자, 진도 수비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서는 왕의 교지를 높이 들고, 진도성의 성문을 향해 말을 달렸다.

“어명이다! 국왕 폐하와 도방 영도자 김 공의 명을 받들어, 역도 송길유를 체포하러 왔다! 성문을 열고 투항하라! 저항하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다!”

 

성벽 위는 조용했다. 잠시 후, 육중한 갑옷을 입은 송길유가 홀로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박서와 그 뒤에 도열한 삼별초를,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내려다보았다.

 

“박서 장군. 자네가 결국 그 선비 놈의 칼이 되기로 작정했는가.”

 

“송 장군! 장군은 나라의 큰 공을 세운 분이시오. 어찌하여 역도의 길을 택하셨소. 지금이라도 순순히 밧줄을 받으면, 김 공께서 정상참작을…”

 

“시끄럽다!” 송길유가 포효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무인의 기개가 담겨 있었다.

“나는 삼십 년간 이 최씨 막부를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런데 고작 글 나부랭이나 읽던 애송이가 나타나, 내 모든 것을 빼앗고 이제는 내 목숨마저 거두려 하는구나!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영웅이 역도가 되고, 서생이 주인이 되는구나!”

 

그것은 그의 마지막 한탄이었다. 그는 더 이상 박서를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충성했던 북쪽, 강화가 있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었다.

 

“허나, 내 목은 내가 거둔다! 선비 놈의 손에 더럽혀질 내 목이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신의 목에 칼을 깊숙이 그었다. 늙은 호랑이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성벽 위에서 쓰러졌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 장렬하고도 비참한 최후였다.


송길유의 자결 소식은 즉시 강화에 보고되었다. 김약선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담담한 얼굴로 보고를 들었다. 그의 곁에 있던 박진은 "스스로 무덤을 판 어리석은 자의 최후"라 평했고, 최민준은 통쾌함보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약선은 즉시 송길유의 죽음을 ‘왕명을 거역한 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역도’로 공표했다. 그리고 그의 잔당들에게는, 자수하여 광명을 찾을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며 회유책을 썼다. 구심점을 잃고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달은 그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김약선의 도방 장악은, 이로써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강화의 그 누구도, 감히 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김약선은 홀로 서재에 앉았다. 그는 암살을 지시했고, 적을 궁지로 몰아 자결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세력을 무자비하게 해체했다. 그는 서책을 펼쳤다. 성현들의 고결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글자들이 예전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이제는 묵향 대신 희미한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때, 아내 최씨 부인이 조용히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잔을 채워주었다.

 

“이제야, 이 집안의 진짜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서방님의 결단력에 크게 만족하셨을 겁니다. 시끄러운 뱀들을 모두 치우셨으니, 이제 서방님께서는 진정으로 서방님의 세상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김약선은 아내가 따라준 술을 말없이 마셨다. 술은 썼지만, 그의 마음을 데워주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건너온 강을 돌아보았다. 강 저편에는 이상을 꿈꾸던 선비 김약선이 서 있었고, 지금 이편에는 피 묻은 권력을 쥔 도방의 영도자 김공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과 화해해야 했다. 선비의 마음과, 군주의 마음. 그 둘 사이에서, 그는 새로운 자신을 찾아야만 했다. 내부의 적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자연스럽게 강화도 밖, 이 나라의 진짜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북쪽의 거대한 땅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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