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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7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7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7장: 밀서(密書), 칼날이 된 글씨밤은 이슬을 머금고, 강화로 향하는 길목은 짙은 해무에 잠겨 있었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암살과 밀회를 위한 완벽한 무대였다. 갯벌과 갈대밭 사이로 난 좁은 길목, 뭍에서 오는 배가 닿는 나루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림자 세 개가 갈대보다 낮은 자세로 숨어 있었다.그 중심에는 장혁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김약선의 충직한 집사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상대를 기다리는, 잘 벼린 비수 같은 존재였다. 그의 눈은 안개 너머, 나루터 방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김약선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죽이지 마라. 서신만 빼앗아라.' 그것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었다.상대를 살려둠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자신들의 존재를 완벽히 숨기려는 고.. 2025. 7. 7.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6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6장: 첫 번째 균열같은 시각, 해서(海州).수비대장 조익겸(趙益謙)의 저택에서는 밤늦도록 주연(酒宴)이 한창이었다. 몽고와의 전쟁으로 온 강토가 신음하고, 수도 강화의 백성들조차 부족한 물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지만, 이곳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잘 기름칠 된 옻상 위에는 바다와 육지의 진미가 가득했고, 곱게 단장한 기생들의 웃음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밤공기를 간질였다. 조익겸은 비단 방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흡족한 미소로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최씨 막부(崔氏 幕府)의 권력 아래 빌붙어 얻어낸 달콤한 과실이었다. "크하하! 좋다, 좋아! 이래야 사는 것 같지!" 그가 기름진 손으로 기생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던 순간이었다. 하인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 2025. 7. 7.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5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5장: 피의 대가, 칼날의 서약 '실족사(失足死)'. 그 세 글자가 얼음송곳이 되어 방 안의 모든 온기를 빨아들였다. 최민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벌떡 일어나 방문을 향해 뛰쳐나가려는 것을, 옆에 있던 박진이 간신히 붙잡았다. "어딜 가려는 겐가!" "놓으십시오, 대감!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자는… 그자는 제게 형님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썩어빠진 세상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데 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최민준의 절규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그는 건장한 무인이었으나, 지금은 상처 입은 아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김약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 2025. 7. 6.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4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4장: 막부(幕府)의 그늘, 왕국(王國)의 기록 (長篇)차가운 잿빛 절망이 김약선의 사랑채를 잿물처럼 적셨다. 희미한 촛불은 흔들렸고, 탁자 위의 찻잔은 온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최항이 쳐놓은 '규정'이라는 거미줄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성벽보다도 견고하게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의욕에 불타던 젊은 무관 최민준은 분을 이기지 못해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비겁하고 졸렬한 수작을…! 결국 서류 창고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그 열쇠는 자기 손에 쥐고 있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어찌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칼을 들고 막아서는 것이 덜 비겁할 것입니다!" "젊은이, 그게 바로 그 자의 방식일세. 그리고 그 방.. 2025. 7. 6.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3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제3장: 가시밭길의 첫걸음진양부를 나서는 김약선의 등 뒤로 쏟아지던 최항의 시선은, 그의 살갗에 박힌 가시처럼 내내 따끔거렸다.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내내, 김약선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늙은 용은 그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한 달. 그 안에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모든 것은 최항의 차지다. 그의 피비린내 나는 방식이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고, 자신이 꿈꾸는 '법도의 정치'는 한낱 서생의 공허한 망상으로 치부될 터였다.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사립문을 들어서자, 아내 최씨 부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았다. 그녀는 남편의 굳은 얼굴만 보고도 모든 것을 짐작한 듯,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서방님." 둘만 .. 2025. 7. 5.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2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2장: 늙은 용의 시험 (長篇)김약선의 걸음은 무겁고도 신중했다. 최우가 거하는 진양부(晉陽府)로 향하는 짧은 거리는, 마치 강 하나를 건너는 듯 이질적인 세계로 들어서는 과정과 같았다. 그가 사는 동네가 선비들의 묵향과 나직한 담소 소리로 채워져 있다면, 진양부로 향하는 길목부터는 세상이 달라졌다. 길은 더 넓고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고, 길가에는 백성들의 노역으로 지어진 임시 판잣집 대신 위압적인 망루와 목책이 즐비했다. 공기 중에는 짠 내와 흙냄새에 더해, 말먹이 짚과 무쇠를 벼리는 냄새, 그리고 사람의 땀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삼엄한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도방(都房)의 무사들이 5보, 10보 간격으로 서서 지나가는 모든 것을 매섭게 지켜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 2025. 7. 5.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1장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1장: 용(龍)의 눈빛, 칼날 위에 서다1245년 여름, 강화(江華).바람이 거셌다. 소금기를 머금은 강화의 해풍이 연무대(練武臺)의 깃발을 찢어버릴 듯 흔들었다. "흐읍!" "하!" 수백의 사내들이 토해내는 기합이 바람 소리를 갈랐다. 그들은 고려 최정예 부대이자, 무신정권의 심장인 삼별초(三別抄)의 군사들이었다. 맨몸으로 짝을 이뤄 서로를 내던지고, 묵직한 목검을 맹렬하게 부딪치는 그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순히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었다. 실전(實戰). 언제든 몽고의 잡배들 목을 벨 수 있는 날카로운 살기(殺氣)가 훈련장 가득 넘실거렸다.그 아수라장 같은 훈련장을, 한 사내가 산처럼 미동도 없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백발이 성성한 노인. 그러나..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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