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피아를 설립하고 마피아 전쟁에서 승리한 보스 살라토레 마란자노
어린 시절과 이민
살바토레 마란자노는 1886년 7월 31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람마레 델 골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당시의 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마피아의 부상
미국에서 마란자노는 특히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피아의 조직 범죄에 연루되었다. 불법적인 주류 생산과 유통으로 인해 범죄 조직이 번성했던 금주법 시대에 마란자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카스텔람마레 전쟁
마란자노는 1930년대 초 마피아 내부에서 발생한 분쟁인 카스텔람마레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마피아의 두 라이벌 파벌 간의 권력 다툼이었으며, 마란자노는 한 파벌을 이끌고 조 마세리아는 다른 파벌을 이끌었었다. 이 전쟁으로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도시속에서 총격전을 벌이곤 했다.
조 마세리아의 패배
카스텔람마레 전쟁은 1931년 마란자노가 찰스 "럭키" 루치아노 등의 지원을 받아 마세리아를 성공적으로 제거하면서 종결되었다. 이 승리로 마란자노는 마피아의 핵심 인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마피아의 재편
마세리아의 사망 이후 마란자노는 내부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해 미국 마피아의 재편을 모색했다. 마란자노는 자신을 최고 책임자로 하는 중앙집권적 구조를 도입하여 위원회로 알려진 통치기구를 설립하고자 했다.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반대의견
그러나 마란자노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스타일과 권력 공고화 시도는 마피아 내부에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마세리아에 맞서 그를 지지했던 일부 마피아들, 특히 찰스 "럭키" 루치아노와 다른 영향력 있는 마피아들은
그의 방식에 불만을 품게 된다.
암살과 마란자노의 종말
1931년 9월 10일, 마란자노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45세의 나이로 암살당했다. 이 암살은 마란자노의 독재적인 방식에 불만을 품은 루치아노와 다른 마피아 조직원들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사건은 보스가 지배하던 구식 마피아의 종말을 알린 사건이었고 이후 럭키 루치아노의 마피아 시대가 도래했다.
살바토레 마란자노의 생애와 경력은 비교적 짧았지만, 그가 미국 마피아의 진로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마피아를 재편하려는 그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마피아 위원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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