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의 독립영웅이자 남수단을 최빈국이자 전쟁터로 만든 독재자 살바 키르 마야르딧
부시 미국 전대통령이 준 검은색 카우보이모자를 즐겨 쓴것으로도 유명하다
Salva Kiir Mayardit
Salva Kiir Mayardit
출생과 배경
살바 키르 마야르딧은 1951년 9월 13일 수단의 바흐르 엘 가잘 지역에 있는 아콘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남수단의 일부이다).
딘카(디카) 공동체에서 자란 키르는 수단 정부의 지배 아래 그의 민족이 겪는 문제를 직접 경험했다.
초년 활동과 군사 경력
키르의 정치 활동 참여는 청소년 시절에 시작되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아냐냐 반군 운동에 합류했으며 이는 남수단의 자치를 추구했다. 이 운동은 후에 1980년대 초 SPLA(수단 인민 해방군)으로 발전하며 키르는 그 중요한 지도자 중 한명이 되어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수단 내전(1983-2005) 동안 키르는 SPLA 내에서 중요한 군사 지도자로 부상하였으며 군대를 지휘하고 수단 정부군에 대항하는 저항 노력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력과 전략적 총명함은 동료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으며 SPLA 내에서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활약하였다.
평화 협상과 독립
살바 키르는 2005년에 체결된 통합평화협정(CPA)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주요 인물로 나타났다. 이 협정은 SPLA와 수단 정부 간의 장기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남수단의 독립을 위한 길을 열었다. CPA의 체결 이후, 키르는 2011년 독립 선거까지의 임시 기간을 지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대통령직과 도전
2011년 7월 9일 남수단이 독립하자 살바 키르 마야르딧은 그 나라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직 기간 동안 정치적 불안, 민족 갈등,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특히 전 부통령인 리에크 마차와의 계속되는 갈등이 지속되었다.
안정을 확립하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수단은 다양한 민족 집단과 정치 세력 사이의 폭력 발발을 계속 경험했다. 키르의 지도력 스타일과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은 국내외에서 끊임 없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살바 키르의 임기동안 경제적 무능과 차별, 그리고 부정부패가 계속 되었고 선거 없이 재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부통령과의 갈등과 많은 문제로 인해 다시 남수단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2013년 12월 15일 ~ 2020년 2월 22일에 이르는 남수단 내전동안 다시 남수단은 전쟁터가 되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게 되었다.
이 전쟁동안 수만명이 사망하였고 200만이 넘는 난민, 수많은 전쟁범죄가 일어났고, 전쟁에 책임은 살바 키르가 초래한것으로 알려져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남수단의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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