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이상을 죽였다고 하는 독일 최악의 살인마 피터 니어스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무자비한 독일 연쇄살인범이자 산적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피터 니어스.
그의 이름처럼 살인, 강도, 혼란의 흔적을 남긴 니어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악명이 남아있다.
악명의 부상:
16세기 초, 라인란트와 베스트팔렌 지역에서 피터 니어스의 범죄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법자 및 불량배 갱단의 리더로 알려진 니어스의 범죄 행위는 잔인한 살인부터 대담한 강도 행각에 이르기까지 극악무도한 행위가 광범위했다. 잔인함과 교활함으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의 이름만 들어도 대중은 공포에 떨게되었다.
공포의 통치:
니어스와 그 일당의 범죄 행위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 사회는 이들의 공격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렸고, 당국은 추적하기 어려운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의 대담한 행동에 대한 소문은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니어스를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생포와 재판:
하지만 역사상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니어스의 공포의 통치도 끝이 날 운명이었다. 오랜 기간의 도피 끝에 마침내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니어스의 생포를 둘러싼 세부 사항은 그가 저지른 범죄만큼이나 극적이다. 이후 니어스는 그의 악행을 결정지을 재판을 받게 된다.
정의의 어두운 면:
니어스의 재판은 잔인한 고문 등 당시로서는 가혹한 심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는 수많은 범죄를 자백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백의 진실성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당시의 극한 상황과 고문의 의한 자백으로 인해 역사적 정확성에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끔찍한 최후:
1581년,9월 14일엔 온몸을 갈기갈기 찢은 뒤 그 찢긴 상처 안에 기름을 부었고, 15일엔 다리에 끓인 기름을 부어버린 뒤 달궈진 석탄으로 산채로 구워 버린다.
9월 16일 마지막날에는 처형장으로 끌려가 나무 돌림판에 매달려 몽둥이로 42번 쳐맞은 뒤에도 아직까지도 숨이 붙어있어 도끼로 몸을 4토막내어 처형당했다.
유산과 전설:
피터 니어스의 유산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범죄와 악명 높은 이야기에서 그의 이름은 남아있다.
피터 니어스 이름은 범죄 및 테러와 영원히 연관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기록의 정확성은 완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악명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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