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황제, 바르톨로뮤 로버츠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왔고, 그 광활한 파랑 속에는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해적의 이야기는 특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죠. 해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모험과 자유, 그리고 무법의 세계가 떠오릅니다. 이러한 해적들 중에서도 바르톨로뮤 로버츠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는 단순한 해적을 넘어서, 바다의 황제로 불릴 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니까요.
로버츠는 해적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해적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그의 삶은 모험과 반란, 그리고 불멸의 전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바르톨로뮤 로버츠라는 인물이 어떻게 해적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었는지, 그의 생애와 해적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초기 인생과 해적 활동의 시작
1682년 웨일즈의 펨브룩 카운티에서 태어난 로버츠는 약 13세의 나이에 바다로 나가 선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깊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인물로, 나중에 '블랙 바트’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 별명은 그가 프랑스인 포로들을 고문하여 그들의 귀중품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해적선의 선장이 되다
1720년, 로버츠는 웨일즈 해적인 하웰 데이비스가 이끄는 해적선에 합류하게 됩니다. 데이비스가 포르투갈 당국과의 교전에서 사망하자, 로버츠는 선원들에 의해 새로운 선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곧바로 복수를 위해 프린시페 섬의 요새를 공격하고, 인근 마을을 불태웁니다.
바다의 황제 바르톨로뮤 로버츠
대서양을 누비며
로버츠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서아프리카 해안, 카리브해, 브라질 해안, 그리고 뉴펀들랜드까지 항해하며 수많은 배들을 약탈했습니다. 그는 단일 선박뿐만 아니라, 1722년 1월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11척의 선박을 포함한 전체 함대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해적 규약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은 그와 그의 선원들이 합의한 일련의 규칙으로, 해적선에서의 생활과 행동을 규율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규약은 선원들 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반란을 방지하며, 서로의 충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버츠의 규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공정한 분배: 약탈한 재산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선원들은 자신의 몫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규율 유지: 술에 취하거나 싸움을 일으키는 등의 행동은 금지되었으며, 규칙을 어길 경우 징계를 받았습니다.
- 부상자 보상: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선원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집단 결정: 중요한 결정은 선원들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규약은 해적선의 생활을 조직화하고, 모든 선원이 공평하게 대우받도록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로버츠의 해적 규약은 당시 해적들 사이에서도 특히 잘 조직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해적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로버츠의 죽음과 유산
1722년, 로버츠는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수십 년간 칼로 살아온 삶에 걸맞은 종말이었습니다. 로버츠는 화려하고 도발적인 해적기를 사용했으며, 선원들이 배의 일에 투표하고, 음식과 약탈품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해적 규약’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알아본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이야기는 해적의 전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그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모험과 전투는 해적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가 남긴 유산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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