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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범죄자

크리스토퍼 밍스: 해적의 아이돌

by 누사두아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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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밍스: 바다의 전설, 해적의 아이돌



해적의 세계에는 수많은 전설적인 인물들이 있지만, 크리스토퍼 밍스는 특히 독특한 캐릭터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영국 왕립 해군의 평범한 선원으로 시작하여 해적의 아이돌로 불리게 된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모험과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크리스토퍼 밍스

 

해군에서 해적까지


초기 생애와 해군 경력
크리스토퍼 밍스는 1625년경 영국 노퍽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한 그는 해적과 함께 선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전투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기량을 향상시켜 계급을 올라갔습니다.

자메이카 기지와 해적 활동
자메이카가 새로운 기지가 되면서, 밍스는 여러 차례 성공적인 공격을 주도하였고,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높아졌습니다. 스페인의 공격이 집중되는 가운데, 밍스는 포트 로열의 방어를 조직하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고, 강력한 프리깃함 '마스턴 무어’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방어 대신 공격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해적들은 수많은 스페인의 포트 로열 점령 시도를 물리쳤습니다.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공격
1658년 5월, 밍스는 남아메리카 북부의 부유한 도시들을 침략하였고, 톨루와 산타 마르타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테러는 이 지역의 스페인 식민지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쿠마나, 푸에르토 카바요스, 그리고 특히 베네수엘라의 코로는 다음 해에 모두 그의 강력한 해적들에 의해 약탈되고 황폐화되었습니다.

재판과 정치적 혼란
밍스는 자메이카로 돌아와 엄청난 양의 은과 다른 가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문제는 밍스의 병사들이 해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공격은 정부의 승인 하에 이루어졌지만, 약탈된 보물의 큰 비율은 당국에 속했습니다. 이번에는 밍스가 그들과 아무것도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리품은 그와 해적들 사이에 나누어졌고, 이로 인해 밍스는 해적 행위로 자메이카 주지사에 의해 체포되어 잉글랜드로 돌아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사건은 정치적 혼란과 혼동 속에서 무시되었습니다.

 

밍스와 해적단

 

밍스의 독특한 특징

크리스토퍼 밍스는 다른 해적들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특별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해군 경력: 밍스는 영국 왕립 해군의 평범한 선원으로 시작하여 해적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해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량을 향상시키고 계급을 올라가며 해적 활동에 필요한 전략적 지휘 능력을 개발했습니다.
  2. 공격 전략: 포트 로열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밍스는 방어 대신 공격 전략을 사용하여 스페인의 여러 시도를 물리쳤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그의 해적들이 스페인의 포트 로열 점령 시도를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정치적 혼란 속에서의 생존: 밍스는 해적 행위로 체포되어 잉글랜드로 돌아가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정치적 혼란과 혼동 속에서 그의 사건은 무시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해적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4. 해적과의 관계: 밍스는 헨리 모건과 에드워드 맨스필드와 같은 전설적인 해적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격과 리더십은 많은 해적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해적 함대는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큰 해적 함대 중 하나였습니다.
  5. 영국과 스페인 간의 ‘냉전’ 정책: 밍스는 영국과 스페인 간의 휴전에도 불구하고 포트 로열에서 스페인 식민지를 공격하는 임무를 계속했습니다. 이는 그가 영국의 해적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크리스토퍼 밍스를 단순한 해적이 아닌, 전략적인 지휘 능력과 정치적 혼란을 이용한 뛰어난 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말년과 최후

1662년, 밍스는 자메이카로 돌아와 새로운 기함 HMS '센츄리온’을 지휘하며 포트 로열의 지휘관으로서의 임무를 재개하였습니다. 이미 10월에는 첫 번째 해적의 목표인 쿠바의 산티아고가 쉽게 함락되어 많은 전리품을 가져왔습니다. 헨리 모건과 에드워드 맨스필드와 같은 많은 전설적인 해적들은 밍스의 인격을 존경했습니다.

 

네일전투(Four Days’ Battle)

 

크리스토퍼 밍스의 최후

크리스토퍼 밍스의 최후는 1666년의 네덜란드와의 전투, 특히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진 ‘네일전투(Four Days’ Battle)'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장기간의 해전 동안 밍스는 네덜란드 함선의 돛대에 있던 저격수가 발사한 두 발의 머스킷 총알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이 상처로 인해 런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영국 해군과 해적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용감함과 리더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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