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6장: 첫 번째 균열
같은 시각, 해서(海州).
수비대장 조익겸(趙益謙)의 저택에서는 밤늦도록 주연(酒宴)이 한창이었다. 몽고와의 전쟁으로 온 강토가 신음하고, 수도 강화의 백성들조차 부족한 물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지만, 이곳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잘 기름칠 된 옻상 위에는 바다와 육지의 진미가 가득했고, 곱게 단장한 기생들의 웃음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밤공기를 간질였다. 조익겸은 비단 방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흡족한 미소로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최씨 막부(崔氏 幕府)의 권력 아래 빌붙어 얻어낸 달콤한 과실이었다.
"크하하! 좋다, 좋아! 이래야 사는 것 같지!"
그가 기름진 손으로 기생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던 순간이었다. 하인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리, 웬 서신이 하나 당도하였사온데… 발신인이 없습니다."
"웬 놈이 이 밤중에 장난질이냐!" 조익겸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하인이 내민 서신 봉투에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것을 보자, 그의 술기운 오른 얼굴에 순간 경계심이 스쳤다. 그는 기생들을 물리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신을 받아 들었다.
봉투를 뜯고 안에 든 종이를 펼친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종이 위에는 단 두 줄의 문장만이, 마치 저주처럼 까맣게 적혀 있었다.
'사라진 칠천 석.'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조익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 숫자를 아는 사람은 자신과 해서 현감 안치행, 그리고 강화의 그분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가 떨리는 눈으로 다음 문장을 읽었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우물 속의 물귀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흐읍!"
조익겸의 손에서 서신이 파르르 떨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며칠 전, 그가 현감 안치행과 함께 '처리'했던, 입 가벼운 부하 놈.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처리했던 바로 그놈이었다. 물귀신이라니! 마치 그놈의 원혼이 지옥에서 돌아와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방 안의 가야금 소리는 어느새 곡소리처럼 들렸고, 창밖의 바람 소리는 원혼의 울음소리 같았다.
"끄, 꺼져라! 모두 다 물러가! 당장!"
그는 겁에 질려 소리치며 술상을 엎었다.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무릉도원이었던 공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익겸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었다. 누군가 알고 있다. 모든 것을. 그리고 다음 차례는 자신일지도 모른다.
'안치행 그놈 짓인가? 아니야. 그놈도 공범인데. 그렇다면 강화의 그분께서? 설마… 꼬리 자르기를 하시려는 건가? 아니면… 제삼자? 대체 누구지?'
머릿속이 뒤엉키고, 숨이 가빠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허둥지둥 옷을 꿰어입고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해서 현감 안치행의 관아였다.
"이 무슨 미친 소리요, 대장! 이 밤중에 찾아와서!"
비밀리에 만난 안치행은 조익겸의 횡설수설을 듣고 질색했다. 하지만 조익겸이 내민 서신을 읽고 나자, 그의 얼굴도 하얗게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대체…." "자네 짓이지! 자네가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혼자 빠져나가려는 수작이지!" 조익겸이 안치행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거 놓으시오! 내가 미쳤다고 내 목에 칼을 들이미는 짓을 한단 말이오!" 안치행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분명 대장의 입 가벼운 부하 놈들 중 하나가 발설한 게 틀림없어!"
두 공범의 추악한 다툼이 어둠 속에서 이어졌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공포가 그들의 탐욕스러운 동맹에 선명한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안치행이 문득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중앙에서 감찰이 나온 것 아닐까? 부마 김약선이 진양공의 명을 받아 군량미 비리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잖소!"
"김약선? 그 책상물림 선비 놈이 여기까지 손을 썼을 리가…." 조익겸은 부정하면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선비의 방식은 칼보다 무섭다고 했던가.
"어찌 되었든 이대로는 우리 둘 다 죽소! 당장 강화에 알려야 하오! 문 장군께!"
안치행의 말에 조익겸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문처립(文處立) 장군. 도방의 핵심 장수이자 최항의 심복. 이 모든 비리의 정점에 서서 가장 큰 몫을 챙기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실질적인 배후였다. 그는 최씨 군사 막부의 썩은 동아줄 중에서도 가장 굵은 줄이었다.
다시, 강화. 김약선의 사랑채.
장혁이 어둠 속에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그의 보고는 간결했지만, 그 내용은 폭풍과도 같았다.
"조익겸은 공황 상태에 빠져 한밤중에 해서 현감 안치행을 찾아갔습니다. 둘 사이에 심한 다툼이 있었고, 방금 전 조익겸이 극비리에 강화로 밀사를 보냈다는 첩보입니다. 수신자는… 도방의 문처립 장군입니다."
"문처립…!"
그 이름이 나오자, 박진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결국 그놈이었군. 최항의 가장 탐욕스러운 개. 막부의 권세를 등에 업고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재산을 불리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한 놈이지. 일이 커졌어, 부마. 우리는 이제 지방의 쥐새끼가 아니라, 막부의 심장부에 있는 이리를 건드린 셈이야."
하지만 김약선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아닌, 차가운 확신이 서려 있었다. 첫 번째 비수는 정확히 급소에 박혔다. 뱀의 꼬리를 밟았더니, 몸통을 지나 머리의 위치까지 드러낸 것이다.
"잘 되었소."
김약선이 나직이 말했다.
"이제 우리의 싸움터는 더 이상 먼 지방이 아니오. 바로 이 강화, 우리 발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최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 자네 동료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네. 우리는 이제 그 원흉의 멱살을 잡을 실마리를 찾았어."
최민준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김약선은 다시 장혁에게 명했다.
"그 밀사를 중간에서 가로채야겠다. 죽이지는 마라. 서신만 빼앗고 조용히 돌려보내라. 우리는 이제… 저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아야겠다."
첫 번째 균열이 생겼다. 이제 그 균열을 파고들어 성벽 전체를 무너뜨릴 차례였다. 김약선은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최씨 막부라는 거대한 성채가, 자신의 작은 반격에 미세하게나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작은 진동이, 거대한 붕괴의 서막이 될 것이라 그는 믿었다. 싸움의 무대는 이제 강화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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