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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10장

by 누사두아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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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10장: 안개 속의 추격

새벽의 강화는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한여름의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다 안개는 섬 전체를 거대한 장막으로 가려, 지척의 아군과 적군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곳은 고려의 심장이자 항전의 보루였지만, 오늘 이 새벽만큼은 누군가에게는 도피처이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냥터가 될 참이었다.

장혁은 갑곶나루(甲串津)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소나무 숲에 몸을 숨긴 채 옅어지는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뒤로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수하 십여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장혁의 진짜 신경은 이곳, 공식적인 관문이 아닌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도망자는 대로(大路)로 다니지 않는다.’

 

그는 수하의 절반 이상을 강화 남단의 후미진 포구와 작은 어선이 몰래 정박할 만한 갯벌로 흩어놓았다. 조익겸이라는 쥐가 들어올 쥐구멍은 따로 있을 터였다.

같은 시각, 강화성 내 문처립의 저택은 살기로 들끓고 있었다.

"멍청한 쥐새끼 한 마리를 놓쳐! 당장 놈의 목을 가져오지 못할까!"

문처립의 고함에, 칼을 든 자객(刺客)들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도방의 정규군이 아니었다. 문처립과 최항이 비밀리에 관리하는, 오직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칼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간단했다.

 

‘조익겸을 찾아라. 흔적을 남기지 마라. 바다에 빠진 실족사로 만들어라.’

 

두 개의 사냥이, 안개 속에서 동시에 시작되고 있었다.


작은 어선 위에서, 조익겸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멀미와 공포로 위액을 몇 번이나 토해낸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품속의 비밀 장부를 부적처럼 끌어안았다. 저것만이 자신의 목숨값이었다. 희미하게 강화도의 윤곽이 안개 너머로 드러나자, 그는 사색이 되어 뱃사공에게 소리쳤다.

 

"갑곶나루로 가지 마라! 저기, 저쪽! 갈대밭이 무성한 후미진 갯벌로 배를 대라! 삯은 두 배로 주겠다!"

 

뱃사공은 관복을 입은 자의 흉측한 몰골과 귀기 서린 목소리에 질려, 말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조익겸이 기억하는, 과거 군수물자를 몰래 빼돌릴 때 이용했던 그들만의 비밀 통로였다. 그곳이 지금은 자신의 유일한 살길이라 믿고 있었다.

그의 어리석은 믿음은, 장혁의 날카로운 예측과 정확히 일치했다.

 

"…왔다."

강화 남단, 이름 없는 포구의 갈대밭에 숨어있던 장혁의 수하가 나직이 말했다. 안개를 뚫고 작은 어선 한 척이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즉시 약속된 신호가 전달되었다. 흩어져 있던 장혁의 팀이 조용히 포구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눈은 또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샅샅이 수색하던 문처립의 자객들 역시, 이 수상한 어선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들의 눈빛이 교활하게 빛났다. 저 배에 그들의 목표물이 타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마침내, 배가 갯벌에 닿았다. 조익겸이 비틀거리며 육지로 발을 내디뎠다. 그가 뱃사공에게 돈주머니를 던져주고 황급히 돌아서는 순간, 갈대밭 속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장혁이었다.

 

"조익겸 대장인가?"

 

조익겸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구냐!"

 

"부마 김약선 공의 명을 받고 왔네. 지금 당신은 극히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와 함께 가야 산다."

 

김약선. 그 이름에 조익겸의 얼굴에 희망과 의심이 교차했다. 이 자들을 믿어도 되는가? 혹시 이것도 문처립의 함정은 아닌가?

그가 망설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피쉭!’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 한 발이 조익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나무에 박혔다. 뒤이어, 갈대밭 사방에서 검은 복면을 한 자객들이 튀어나왔다.

 

"크헉!"

 

조익겸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장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적이다! 나리를 보호하라!"

장혁의 수하들과 문처립의 자객들이 안개 낀 갯벌에서 격돌했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 살점이 베이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장혁의 수하들도 숙련된 무사들이었으나, 오직 살인만을 위해 훈련된 자객들의 공격은 치명적이고 무자비했다.

 

"으악!"

 

장혁의 수하 한 명이 자객의 단검에 옆구리를 찔려 쓰러졌다. 장혁은 이 싸움이 길어지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었다. 오직 조익겸의 확보와 탈출이었다.

 

"연막!"

장혁이 외치자, 수하 하나가 품에서 연막탄을 꺼내 땅에 던졌다. 자욱하고 매캐한 연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자객들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장혁은 땅바닥에서 벌벌 떨고 있는 조익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정신 차려라! 죽고 싶지 않으면 뛰어!"

 

장혁과 남은 수하들은 겁에 질려 다리가 풀린 조익겸을 반쯤 끌다시피 하며, 약속된 탈출로인 갯벌 옆 습지대로 내달렸다. 질척이는 뻘이 발목을 잡고, 날카로운 갈대 줄기가 살을 에는 험난한 길이었다. 뒤에서는 자객들의 욕설과 추격하는 발소리가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이겼지만, 동시에 패배했다. 적의 추격은 잠시 따돌렸지만, 이제 그들은 강화라는 거대한 섬 안에서 최씨 막부의 최고 실세를 적으로 돌린 채, 가장 중요한 증인을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안개가 짙은 갈대밭을 헤치며, 장혁은 김약선이 미리 일러준 안전가옥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의 등 뒤에서는, 이제는 고려의 수비대장이 아닌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한심한 남자가 된 조익겸의 거친 흐느낌만이 갯벌의 바람 소리에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추격은 끝났지만, 이제부터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의 숨 막히는 농성전이 시작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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