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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11장

by 누사두아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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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소설: 풍운의 시대, 새로운 하늘 아래

 

제11장: 살아있는 장부(帳簿)

강화성 외곽, 잡목과 덩굴에 뒤덮여 이제는 더 이상 불을 때지 않는 낡은 질그릇 가마터.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한 이곳이 박진이 마련해 둔 비밀 은신처였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은 감시를 피하기에 최적이었고, 복잡한 내부 구조는 유사시 방어와 도주에 용이했다.

이곳에 먼저 도착해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약선과 박진은,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장혁의 일행이 거의 반 시체가 된 사내를 끌고 나타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익겸의 몰골은 처참했다. 최씨 막부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의호식하던 지방의 호랑이는 온데간데없고, 겁에 질려 오물까지 지린 채 덜덜 떠는 한 마리 생쥐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낯선 사내들을 보며,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구차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시오! 나는…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모든 것을 다 말하겠소! 제발 목숨만…!"

 

김약선은 그 추한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연민과 혐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치밀었다. 저 모습이 바로, 막부의 칼날 아래 양심을 팔아버린 자의 말로였다.

그들은 조익겸을 가마터 안쪽 가장 깊숙한 방으로 끌고 갔다. 김약선은 직접 따뜻한 차를 한 잔 건넸다. 예상치 못한 온정에 조익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약선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는 최항이나 문처립이 아니오. 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을 무작정 죽이지는 않소. 조 대장, 당신에게는 지금 두 개의 길이 있소. 하나는 문처립이 바라는 대로, 모든 비밀을 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길이오. 다른 하나는,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 증인이 되어, 나와 함께 법의 심판을 구하는 길이오. 당신 가족의 안위와 당신의 목숨은, 이제 당신의 입에 달렸소."

 

김약선의 말은 위협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위협보다도 현실적인 무게를 담고 있었다. 박진이 옆에서 거들었다. "군량 횡령은 사직의 근간을 흔드는 대역죄일세. 허나, 수괴(魁)를 고발한 자에게는 그 죄를 경감해 주는 것이 또한 이 나라의 법도일세. 어느 쪽이 살길인지, 스스로 판단하게."

조익겸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는 품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기름종이에 싼 궤짝을 미친 듯이 풀어헤쳤다. 그의 마지막 목숨줄, 비밀 장부였다.

 

"여기… 여기 다 있소! 지난 5년간 문처립 장군에게 바친 뇌물의 내역과, 그에게서 받은 명령들이 모두! 이것만 있으면, 저놈을…!"

 

김약선과 박진은 굳은 얼굴로 장부를 받아 들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들의 표정은 점차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장부에는 문처립에게 흘러 들어간 뇌물의 액수와 날짜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문처립의 목을 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장에 있었다.

장부의 후반부는 단순한 횡령 기록이 아니었다. '별도 비축미(別途 備蓄米)'라는 항목 아래, 빼돌린 군량미의 상당량이 현금화되지 않고 어딘가로 계속 운송되고 있었다. 그 종착지는 강화 인근의 작은 섬, 교동도(喬桐島)의 폐쇄된 군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병(私兵)?"

 

김약선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장부에는 '충의대(忠義隊)'라는 이름의 사병 집단에게 군량과 무기가 비밀리에 보급된 내역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규모는 어림잡아 오백. 삼별초의 정예병에 버금가는 숫자였다.

 

최민준이 경악하며 외쳤다.

"이것은… 단순한 비리가 아닙니다. 반역입니다! 최항이, 진양공 몰래 자신만의 군대를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들이 쫓던 것은 막부의 살을 파먹는 탐관오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막부의 심장을 노리는 거대한 암 덩어리였다. 최항은 아버지가 늙고 병들기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는 순간,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약선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장부는 이제 문처립 하나를 겨누는 칼이 아니었다. 최씨 막부 전체를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끔찍한 불씨였다.


그날 밤, 김약선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의 머릿속은 '충의대'라는 세 글자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실을 어찌해야 하는가. 최우에게 바로 고해야 하는가? 하지만 병든 아버지가 아들의 반역 기도를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침실에 들어서자, 아내 최씨 부인이 그를 맞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죽을 쑤어 오는 여인이 아니었다. 화려한 자수가 놓인 비단옷을 입은 채, 새로 들여온 듯한 백옥 비녀를 매만지며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누리는 모든 사치는 바로 저 막부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더니, 비녀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표정을 보니, 드디어 쥐를 잡으셨군요. 그런데 어찌하여, 쥐가 아니라 호랑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십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었다. 김약선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오라비, 최항의 역모를 어찌 아내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피곤한 일이 좀 있었소."

 

"피곤한 일이라." 최씨 부인이 남편에게 다가와 그의 관복 매무새를 만져주며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순종적인 아내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정치적 동반자의 눈빛이었다.

 

"서방님, 저를 규방에 갇혀 지내는 화초로 여기지 마십시오. 저는 진양공의 딸입니다. 서방님께서 평생 읽으신 책보다, 제가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피와 음모의 냄새가 더 진할 것입니다."

 

그녀는 김약선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서방님께서 지금 망설이는 이유를 압니다. 제 오라비 일이겠지요.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 아이는 서방님의 적이기 이전에, 제 적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가 권력을 잡으면 서방님뿐만 아니라, 저와 우리의 아이들 또한 살아남지 못합니다. 벽만 보고 있지 마시고,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서방님께서 벽이라 여기는 곳에서, 저는 오히려 문을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김약선은 아내의 눈을 보았다. 그곳에는 사치와 권력욕, 그리고 남편과 자식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이상을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그의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비밀을, 그는 더 이상 혼자 짊어질 수 없었다.

김약선은 마침내 결심한 듯, 아내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부인, 일이… 아주 커지게 되었소. 문처립의 배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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