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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악마 찰스 테일러

by 누사두아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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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2003년까지 재임한 라이베리아대통령이자 시에라이온 내전을 일르킨 전범인 독재자이자 학살자

찰스 매카서 강카이 테일러

 

찰스 테일러

 

초기생애


1948년 1월 28일 라이베리아 아싱턴에서 태어난 찰스 테일러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경제학을 배운 뒤 라이베리아로 돌아왔다. 그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라이베리아 정계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되었고. 리비아의 카다피의 지원을 등에 업은 테일러는 라이베리아 민족애국전선(NPFL)으로 알려진 반군 세력을 이끌게 된다. 

 

정권장악

1989년에 시작된 라이베리아 내전에서 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대통령이었던 사무엘 도를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수년간의 전투와 평화 협정 끝에 1997년 찰스 테일러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 임기는 지속적인 폭력, 부패, 인권 침해로 가득찼다. 이웃 시에라리온내전에 연루되고 반군 단체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되었다.

 

범죄행위

테일러는 테러 행위, 사람의 생명, 건강, 신체적 또는 정신적 안녕에 대한 폭력, 시에라리온 무력 분쟁에서의 소년병 사용 등의 행위를 포함한 수많은 전쟁범죄를 일으켰으며

 또한 시에라리온 분쟁 중에 발생한 강제 노동과 성노예,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연루된 반군 단체에 대한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동안 어마어마한 재산을 불법으로 은닉하였고 아직까지도 환수하지 못했다.

 

재판 받는 찰스 테일러

 

최후

2003년 국내외의 압력에 못 이겨 찰스 테일러는 사임하고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그 후 그는 시에라리온 반군 지원과 관련된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 및 기타 심각한 국제 인도법 위반 혐의로 시에라리온 특별 재판소에 의해 기소되었다. 2006년 그는 체포되어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되었고 유죄를 받게되었다.
징역 50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살고있으며 그의 유죄 판결은 전직 국가 원수가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라는 점에서 국제 사법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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