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부 고원은 1966년부터 1975년까지 나이지리아 국가 원수를 역임한 나이지리아의 군 장교이자 정치인이다.
나이지리아 내전인 비아프라 내전때 1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초기 생애와 군 경력
야쿠부 고원은 1934년 10월 19일 나이지리아 고원주 칸케에서 태어났으며, 성공회 신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야쿠부 고원은 20살이었던 1954년 나이지리아 육군에 장교로 입대하여 수년에 걸쳐 계급을 올렸다. 그는 나이지리아와 해외에서 군사 훈련을 받아 1963년 중령의 계급에 오른다.
권좌에 오르다
1966년 1월 15일, 나이지리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 하지만 아귀이 이론시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제압하게된다. 아귀이 이론시는 나이지리아의 연방제를 단일국가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야쿠부 고원은 그에 반대하고 있었다.
1966년 7월 29일, 고원은 군사 쿠데타로 아귀이 이론시와 그의 파벌을 살해하고 나이지리아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심각한 인종적, 정치적 긴장에 직면해 있었으며 국가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비아프라 내전
고원이 국가 수반으로 재임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비아프라 전쟁이라고도 알려진 나이지리아 내전(1967-1970)이었다. 이 전쟁은 고원이 이끄는 나이지리아 정부와 오두메구 오주쿠 대령이 이끄는 비아프라 분리 독립 국가 간의 갈등이었다. 이 전쟁은 인도주의적 위기와 수많은 인명 손실을 초래했는데 이시기 사망한
민간인만 100만명이 넘었다. 이 사망자의 절반이상은 나이지리아 군이 의도한 기근으로 의한 사망자였다.
"승자 없는 정복은 없다": 고원 정부는 내전 이후 "승자도 패자도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화해 정책을 채택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국가 통합을 촉진하고 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제 이니셔티브
고원은 재임 기간 동안 경제 발전과 국가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청년봉사단(NYSC)과 국가경제개발위원회(NEDC)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경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집권중에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그에따라 석유를 팔며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권좌에서 물러남
1975년 7월 29일, 고원은 우간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하던 중 무르타라 라맛 모하메드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정권을 전복당했다. 그는 이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고원의 재집권을 위한 쿠데타가 있었으나 진압당하고 고원은 나이지리아에서 수배자가 되게된다.
축출 이후
망명 후 고원 야쿠부는 영국에 정착하여 평화롭고 외교적인 삶을 살았다. 워릭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프리카의 평화와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기구와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등 아프리카의 정치원로로 대접받으며 평화롭게 살고있다.
야쿠부 고원은 나이지리아 내전에서의 중요한 시기에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가 통합과 화해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이지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있으며 내전에서의 잘못이 있지만 현재까지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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