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는 일본 군 장교이자 정치인으로 일본 역사상 중요한 시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인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이자 A급 전범이다
생애
1884년 12월 30일 일본 도쿄에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도조 히데키는 육군 중장이었던 아버지 도조 히데노리의 아들로 태어난다. 뛰어난 군인으로써의 면모를 보였던 도조 히데노리와는 달리 도조 히데키는 군인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골목대장으로써 어린 시절 싸움을 즐겨했다고 알려져 있다.
군 경력
도조는 일본 제국 육군 사관학교와 육군 참모 대학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뛰어난 학업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그러나 성공적인 군 경력을 쌓았으며 다양한 참모 및 지휘관 직책을 맡으며 군의 세력중 하나인 통제파를 이끄는 인물이 되었다. 그 후 계급을 올리다가 다른 파벌인 황도파가 일으킨 쿠데타인 2.26 사건을 진압함으로써 권력을 잡게되었다.
권력의 부상
도조는 1930년대에 일본 군부 계급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의 강력한 민족주의와 팽창주의적 견해는 아시아 영토 확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당시 일본의 지배적인 정서와 일치했고 일본제국이 군국주의화 하는걸 가속시켰다.
중일 전쟁이 확대 되는것을 주도했으며 이후 추축국에 가입하며 태평양 전쟁을 계획한다.
1941년 10월, 도조 히데키는 진주만 공습 직전에 일본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로서 그는 일본의 공격적인 군국주의 정책의 핵심 설계자였으며 미국 및 그 동맹국과의 전쟁을 결심하고 진주만 공습 작전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제2차 세계대전
도조가 총리로 재임한 시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의 지도력 아래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필리핀, 싱가포르, 중국 일부 지역 등의 영토를 점령하여 일본 제국의 야욕이었던
대동아 공영권에 가까워 지는듯 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과는 달리 인재등용에서의 실책으로 일본군 삼대오물을 등용하는 등
전쟁에서의 승기를 점차 잃게 된다.
쇠퇴와 사임
전쟁이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도조는 점점 더 많은 도전과 비판에 직면했다. 일본의 군사적 좌절과 연합군의 압박이 가중되면서 도조는 1944년 7월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총리는 고이소 쿠니아키가 대신했다.
전후 재판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후 도조 히데키는 연합군에 체포되어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체포 되기 직전 권총으로 자살 시도를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다른 저명한 일본 지도자들과 함께 도쿄 재판으로도 알려진 극동 국제군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유죄 판결 및 처형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여러 일본 고위 관리들은 평화 범죄,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 등 전쟁 범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48년 12월 23일, 도조는 도쿄에서 교수형에 처형되어 사망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의 리더십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공격적인 행동을 주도했다.
그의 재판과 처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그의 악명을 남기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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