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1887-1975) 중국통일을 이룩했지만
내부에서의 갈등을 해결하지못하고 국공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쫒겨난 인물이다. 중화민국을 46년간 독재했다.
어린 시절과 권력
장개석은 1887년 중국 저장성의 작은 마을 시코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쑨원이 이끄는 중국 국민당(국민당)에 입당했다. 1925년 쑨원이 사망한 후 장제스는 국민당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북방 원정
장개석은 1926년 중국을 통일하고 군벌의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군사 작전인 북방 원정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으로 중국 대부분이 국민당의 통제하에 통일되고 난징에 국민당 정부가 수립되었다. 중국 국민 정부의 탄생이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며 유엔 상임이사국의 지위도 얻으며 황금기를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러나 공산당과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
장개석과 중국공산당의 관계는 논쟁의 여지가 많았다. 처음에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은 군벌주의와 외국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연합 전선을 결성했다. 그러나 두 정당 간의 긴장은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수십 년 동안 간헐적으로 계속된 중국 국공내전으로 이어진다.
2.28사건
1947년 대만에서는 국민정부에 대한 반정부 봉기가 일어난다. 대만에서는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또한
국민정부가 보낸 총독의 만행과 차별에 대항 하여 봉기를 일으킨 것 이었다.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봉기를 대응해 비무장한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으며 그 사망자수는 28000여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만으로 후퇴
중국 국공내전 후 국민당은 마오쩌둥의 공산군에 패배했고 장개석은 1949년 타이완 섬으로 후퇴했다. 이 사건을 국부천대 라고 한다. 그는 대만에 망명 정부를 세우고 계속해서 자신이 중국 전역의 합법적인 통치자라고 주장했으며 대만에서 계엄령과 반대파에 대한 숙청으로 자신의 독재기반을 강화했다.
대만의 권위주의 통치
장개석은 수십 년 동안 철권 통치로 대만을 통치했다. 그의 정권은 계엄령, 검열,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한 탄압으로 특징지어졌다. 장개석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기는 심각한 정치적 박해와 인권 침해로 인해 '백색 공포'라고도 불리우며
공포의 시기로 불리었다.
반공주의
장개석은 확고한 반공주의자였으며 냉전 시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대만을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장을 막는 보루로 보고 장 총통 정부에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받았고 대만을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죽음과 이후
장개석은 1975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장쥥궈가 그 뒤를 이어 총통을 맡는다
장칭궈의 지도력 아래 대만은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로 발전하게되었다.
장개석은 20세기 중국의 지도자로써 독재자, 무능한 지도자, 학살자 라는 여러가지 평가를 받고있으며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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