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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유럽

포르투갈의 학자 출신 독재자 살라자르

by 누사두아 202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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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부터 1968년까지 거의 40년 동안 포르투갈 총리를 역임하였고 권위주의적 정권을 수립하여 포르투갈을

통치한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1889-1970)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어린 시절과 교육

살라자르는 1889년 포르투갈의 비메이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포르투갈에서 경제학과 금융학을 공부한 후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나중에 저명있는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경제 이론

살라자르는 유능한 경제학자이자 금융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1928년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포르투갈 정부 내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군사정권의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경제 위기 기간 동안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 정책을 시행했고 성공적으로 포르투칼의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역할을 다했다.

권위주의 통치

1932년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의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보수적인 가톨릭 신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권위주의적이고 기업주의적인 정권인 에스타도 노보를 창설했다. 그의 지도력 아래 포르투갈은 엄격한 검열과 제한된 정치적 자유를 가진 일당 국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립

제2차 세계대전 중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의 중립을 유지했으며, 이는 포르투갈이 분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다. 포르투갈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일부 유럽 지식인과 유대인 난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식민지 정책

살라자르 정권은 특히 아프리카에서 확장주의 식민지 정책을 추구했다.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와 같은 포르투갈 식민지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경제적 자급자족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의 해외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경제 자립 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은 포르투갈이 자급자족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데 기여했다.

정권의 종말

살라자르 정권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내외적인 압력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 아프리카에서 장기화된 식민지 전쟁, 정부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판으로 인해 불만이 커졌다. 살라자르는 1960년대 후반에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1968년 마르셀로 카에타노가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좌) 카에타노 (우) 살라자르


죽음과 유산

살라자르는 1970년 사망할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의 후임자인 마르셀로 카에타노는 살라자르의 정책 중 일부를 이어갔지만 개혁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1974년 4월 카네이션 혁명은 에스타두 노보 정권의 몰락과 포르투갈의 민주주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는 1970년 7월 27일에 신장 감염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사망하였다.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에 오랫동안 지속된 영향력과 권위주의 정권이 포르투갈 역사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20세기 포르투갈의 중요한 역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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