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클로스 호르티 데 나기바냐는 미클로스 호르티라고 불리는 헝가리의 제독이자 정치인으로 1920년부터 1944년까지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역임한 독재자이다
초기 생애
호르티는 1868년 6월 18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헝가리 켄데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에서 복무하며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중 호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에서 전함을 지휘하며 뛰어난 해군 기술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전쟁 중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군사 훈장을 받았다.
헝가리 리젠시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고 헝가리는 독립 국가로 부상했다. 이때 헝가리는 내륙국이 되었고 호르티는 바다없는 내륙국의 해군제독이란 타이틀을 얻는다. 호르티는 보수적인 헝가리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아 1920년 헝가리 섭정이 되었고, 1944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섭정으로서 그는 사실상 국가 원수 역할을 했다.
정치적 역할
호르티의 섭정 재임 기간은 권위주의 통치와 헝가리의 영토 보전과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계속되었다.
그는 헝가리의 국가 정체성과 유럽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호르티는 헝가리에 막대한 영토 손실을 초래한 제1차 세계대전 후 트리아농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토 중 일부를 되찾고자 했다.
나치 독일과의 동맹
1930년대 후반 헝가리는 나치 독일 및 이탈리아와 가까워지면서 추축국들과 동맹을 맺었다. 이 시기 헝가리는 점점 더 반유대주의적인 정책을 채택했고,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인 법률이 통과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홀로코스트에서의 역할
제2차 세계대전 중 호티 정부는 헝가리에서 유대인 박해에 앞장섰다. 1944년 나치 독일의 압력에 못 이겨 헝가리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추방하는 것을 허용했고, 그 결과 수십만 명이 사망하는데 일조했다.
강제 사임
1944년 10월, 호르티는 전진하는 소련과 단독으로 평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나치에게 발각되었고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파시스트이자 친나치 단체인 화살십자당이 헝가리를 장악했다.
최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호티는 미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후 헝가리는 공산화가 되어버렸고
1957년 2월 9일 사망할 때까지 포르투갈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난다.
포르티 미클로시. 일부에서는 그를 헝가리의 이익과 국가 정체성의 수호자로 보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나치 독일과의 협력과 홀로코스트에서의 그의 역할을 비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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