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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유럽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엔베르 호샤

by 누사두아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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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를 1944년부터 1985년 까지 40년간 통치하며

공산주의와 고립, 억압으로 독재한 엔베르 호샤 

 

엔베르 호샤

 

어린 시절과 교육

1908년 10월 16일 알바니아의 그림 같은 도시 지로카스테르에서 태어난 엔베르 호샤의 일대기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1930년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공부한 후 알바니아로 돌아온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유학 기간은 그의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고 조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미래의 토대가 되게된다.

 

엔베르 호샤의 어린시절



제2차 세계 대전과 권력의 부상

제2차 세계대전의 도가니 속에서 호샤는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와 독일 점령군에 대항하는 저항군을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알바니아 해방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1944년 호샤는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훗샤가 총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주의 사회주의 모델

호샤의 리더십 스타일은 동시대 인물인 조셉 스탈린의 리더십 스타일과 유사했다. 알바니아는 중앙집권적 경제 모델을 채택하고 농업을 집단화했으며, 정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해 가혹한 조치를 시행했다. 호샤는 엄격한 통제와 고립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알바니아는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의 상징이 되었다.

알바니아의 벙커화

호샤 통치의 가장 독특한 유산 중 하나는 알바니아 전역에 벙커를 광범위하게 건설한 것이었다. 잠재적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알바니아의 고립주의 정책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게되었고 오늘날 벙커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국가를 시각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지나간 시대의 증거물로 남아 있으며 통치기간동안 무려 173,371개의 1인용 토치카를 알바니아 곳곳에 설치한것으로 유명하다.

 

알바니아의 토치카



인격 숭배와 억압

호샤의 정권은 인격 숭배가 특징이었으며, 그의 이미지는 공공장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정치적 반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여 광범위한 검열과 만연한 감시 국가로 이어졌다. 호샤 정부가 삶의 모든 측면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알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유산과 공산주의의 몰락

1985년 4월 11일 엔베르 호샤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은 알바니아의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지만 그의 통치의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의 후계자인 라미즈 알리아는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미 동유럽 전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알바니아는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다당제와 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게 된다.

엔베르 혹샤의 삶은 알바니아를 통치한 40년동안 혹평으로 가득차있다.

공산주의, 고립주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그의 헌신은 40년 넘게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오늘날 알바니아가 과거 공산주의의 여파 속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엔베르 혹샤의 이야기는 무분별한 권력과 이념적 열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의 역할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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