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들의 쿠데타로 모렐라스의 독재를 무너트리고 집권한 쿠바의 독재자
폴헨시오 바티스타
어린 시절과 군사적 지위
1901년 1월 16일 쿠바 바네스에서 태어난 바티스타의 여정은 쿠바가
스페인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쿠바 독립 전쟁 중 쿠바 군대의 대열에 오른 바티스타는 전술적 기량과 리더십 기술로 호평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그의 군 경력은 이후 정치와 통치 분야로의 진출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후 중사로 승진하게 된후 군인 노동조합의
지도자가 되었다.
1933년과 1952년 쿠데타
바티스타의 정치 경력은 두 번의 중요한 쿠데타로 인해 시작되었다. 1933년 중사시절의 바리스타는 헤라르도 마차도(Gerardo Machado) 대통령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그의 첫 정치 권력 진출을 알렸다.
쿠데타이후 1940년에 대통령에 올랐으나 바티스타의 통치는 짧았고 그는 이후 군대로 퇴각한 후 거의 20년 후에 다시 등장했다. 1952년 기존 정치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바티스타는 두 번째 군사 쿠데타를 조직하여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고 쿠바의 지도자로서 권력을 장악했다. 이 쿠데타는 바티스타 통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권위주의와 정치적 억압이 증가하는 시대를 열었다.
대통령직과 개혁 노력
1940년 쿠바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티스타는 야심찬 개혁 계획으로 특징지어지는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대통령직은 새로운 노동법과 사회 복지 프로그램의 제정을 포함하여 쿠바 사회 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진보적인 조치의 이행을 위해 노렸했다. 초기 낙관에도 불구하고 바티스타 행정부는 부패와 편애 혐의로 비판에 직면했다.
권위주의 통치와 외국 동맹
1952년 쿠데타 이후 바티스타 정권은 정치적 탄압, 검열, 인권 침해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재 체제로 변모했다. 더욱이 바티스타 행정부는 외국 이익, 특히 미국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여 쿠바 사회 내에서 분노와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통치기간동안 비밀경찰을 통해 2만여명의 희생자가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 혁명과 망명
점점 커지는 불만은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게릴라 전사들이 이끄는 혁명적 열정으로 정점에 달했다. 반란을 진압하려는 바티스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권은 흔들리고 1959년 쿠바에서 탈출하면서 쿠바 혁명은 성공했다.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피난처를 찾아 1973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쿠바는 1959년 1월 3일 혁명군이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는 것으로 쿠바혁명이 성공하게 되었으며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세운 카스트로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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