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도밍고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제24-25·34대 대통령이자 통치기간중 페론주의로 유명한 독재자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여러 차례 연임하며 남미 포퓰리즘의 상징으로 불린다.
어린 시절
후안 도밍고 페론은 1895년 10월 8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로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민자와 원주민의 자손인 메소티소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공학과 군사학을 공부했다.
군 경력
페론은 군에서 경력을 쌓아 아르헨티나 육군 대령이 되었다. 그는 전쟁 학교 교관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권력에 오르다
후안 페론의 정치 경력은 194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는 1943년 노동 및 사회복지부 장관이 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자들과 연대를 맺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노동 및 사회복지 개혁을 도입하여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었다.
대통령으로 선출
페론은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 스타일과 포퓰리즘 정책, 아르헨티나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부인 에바 페론(에비타)과의 긴밀한 관계는 그의 정치적 성공에 기여했다.
이후 그의 정치에 대해서 페론주의 라고 불리게 되었다.
초대 대통령(1946-1952)
첫 임기 동안 페론은 노동자의 권리, 의료 서비스, 노동 보호 강화 등 다양한 경제 및 사회 개혁을 시행했다. 그의 정부는 산업화와 경제 민족주의를 장려했다.
두 번째 대통령직(1952-1955)
1952년 에바 페론이 사망하고 후안 페론의 두 번째 임기에는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의 정부는 군부, 가톨릭 교회, 일부 보수 세력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반대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후 페드로 아람브루가 이끈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게 되었다.
망명
1955년 군사 쿠데타로 페론은 대통령직에서 축출되었고,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다.
권좌 복귀
1973년 후안 페론은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세 번째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세 번째 대통령 임기는 정치적 긴장으로 점철되었고, 1974년 집권 1년만인 그의 사망으로 그의 아내 이사벨 페론이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죽음
후안 페론은 1974년 7월 1일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켰고, 그의 사후 몇 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일련의 군사 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 시기를 겪었다.
후안 페론의 평가는 아르헨티나에서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 그는 포퓰리즘 정책과 노동자 계급의 권리와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성향과 정부의 정치적 반대파 탄압으로 인해 비판도 존재한다. 그가 창시한 페론주의 정치 운동은 오늘날까지도
아르헨티나 정치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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