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레를 통치한 군인출신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어린 시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15년 11월 25일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인 출신으로 산티아고 군사학교를 다녔다.
권력의 자리에 오르다
피노체트는 칠레 군대의 계급을 높여 1973년 칠레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쿠데타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는 칠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옌데는 1970년부터 재임 중이었다. 쿠데타로 아옌데는 사망하고 피노체트가 칠레를 장악하게 되었다.
권위주의 통치
피노체트 정권은 권위주의와 검열,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탄압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는 칠레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킨 후 법령으로 통치했다.
인권 침해
피노체트의 통치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고문, 실종, 살해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로 가득했다.
악명 높은 '죽음의 캐러밴'은 이러한 잔혹 행위의 대부분을 담당한 군부대였다.
경제 개혁
피노체트는 칠레를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경제 정책을 시행했다. "시카고 보이즈" 정책이라고도 불리는 피노체트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경제를 자유화하고 국가 개입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지만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민주주의로의 복귀 피노체트는 국제적 고립과 칠레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압력에 직면했다.
1988년 국민투표에서 칠레 국민은 피노체트의 통치 지속에 반대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패배한 피노체트는 1990년
권좌에서 물러났고 칠레는 민주주의로 복귀했다.
법적 절차
퇴임 후 피노체트는 통치 기간 동안 저지른 인권 침해와 관련된 법적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1998년 인권 침해 혐의로 런던에서 체포되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칠레로 인도되지 않았다.
죽음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그의 정권이 자행한 많은 인권 침해에 대한 재판을 받지 않은 채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칠레에서 엇갈린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일부는 여전히 그의 업적을 지지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그의 암울했던 통치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벌어진 잔인한 탄압과 인권 유린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칠레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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