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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남미

노예에서 황제가 되었던 쟝 자크 드살린

by 누사두아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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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태어나 아이티의 독립 영웅이 되고 폭정을 저지르는 황제가 되었던 쟝 자크 드살린

1758년 9월 20일~ 1806년 10월 17일 (48세)

 

어린 시절

쟝 자크 드살린은 1758년 경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의 생 도미뉴에서 태어났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적인 기록은 그의 어린 시절, 가족, 정확한 출생일 및 양육에 대한 세부 사항을 거의 알려주지 않아, 그의 초기 삶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노예로 태어난 그는 농장에서의 생활이 특징이었던 노예로서의 가혹한 처우를 경험했다.

중년시절과 아이티 혁명

드살린의 삶은 1791년에 시작된 아이티 혁명과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 기간은 그의 중년의 삶을 나타내는데, 그는 두려워할 만한 군사 지도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투상 루베르처 아래에서 복무하면서 그는 전략적인 브릴리언스와 리더십 스킬을 나타내었으며 1802년 루베르처가 프랑스에 포로로 잡힌 후 드살린은 지휘를 맡아 혁명군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이 중요한 단계에서 드살린은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03년의 베르티에 전투는 프랑스군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로, 그의 군사적 재능과 지혜를 보여주는 때였다. 이 승리 이후, 1804년 1월 1일, 드살린은 아이티의 독립을 선언하여 아이티 제 1제국을 수립하여 황제가 된다.

 

혁명시절 드살린

말년과 황제로서의 통치

드살린이 삶은 말년으로 진입하면서 그는 권력을 통합하고 새로운 아이티의 안정된 정부를 수립하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1804년에 그는 자신을 황제 자크 1세로 위임하여 아이티 제 1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드살린은 아이티의 자유와 자주성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1805년에는 흑인으로 모든 아이티 시민을 선언하고 흰 피부 이주민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헌법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아이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드살린의 권위적인 통치와 정책은 국내적인 긴장을 증가시켰다.

드살린의 삶의 나중 기간은 국내적 및 국제적 도전에 의해 특징 지어졌다. 1806년 10월 17일, 그는 음모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이로 인해 아이티에서 통치권을 쟁취하기 위한 후속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의 죽음이후 아이티는 결국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황제 자크 1세

 

유산

쟝 자크 드살린은 아이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으며, 억압에 대한 저항의 영원한 정신을 상징하는 위인으로 남아있다. 아이티 혁명과 독립 아이티의 수립에 대한 그의 기여는 그의 국가의 집단 기억 속에서 튼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 영웅의 모습과는 다르게 폭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황제시절은 함께 남아 기억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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