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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범죄자

돈비토네로 불린 마피아 비토 제노베제

by 누사두아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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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자 럭키루치아노의 부두목으로 주세페 마세리아를 살해한 4인중 한명인 비토 제노베제

비토 제노베제


어린 시절과 이민(1897-1913)

비토 제노베제는 1897년 11월 27일 이탈리아 리시글리아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인생은 어린시절부터 어두운 조직 범죄의 세계와 얽히게 되었다. 16세 때인 1913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역동적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밀집 지역인 뉴욕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마피아 역사에 길이 남을 범죄 경력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마피아의 부상(1913~1930년대)

제노베제는 초기 미국 마피아의 핵심 세력이었던 모렐로 범죄 조직에 소속되어 빠르게 범죄의 밑바닥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초기 범죄 경력에는 금주법 시대에 불법 주류 거래에 가담한 것이 포함되고있다. 1930년대 초의 카스텔람마레 전쟁은 마피아 내부의 권력 투쟁을 헤쳐나가는 제노베제의 전략적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망명과 귀환(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1930년대 후반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제노베제는 이탈리아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때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과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무산되게 된다. 이탈리아 당국에 체포된 제노베제는 1940년대 초 미국으로 송환되어 범죄 경력의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비토 제노베제



마피아 지도부(1940~1950년대)

법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노베제는 교묘하게 유죄 판결을 피하고 마피아 내에서 계속 승승장구했다. 전후에는 프랭크 코스텔로의 뒤를 이어 제노베제 패밀리의 보스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전통적인 마피아의 가치와 자신이 이끄는 범죄 제국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아팔라친 회의와 법적 문제 (1957-1959)

제노베제가 마피아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1957년의 악명 높은 아팔라친 회의는 엄청난 역효과를 낳게되었다.

법 집행 기관의 조사가 강화되어 수많은 마피아가 체포되었고 미국 내 조직 범죄의 규모가 폭로되었다. 1959년, 제노베제는 마약 밀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감옥에서의 제노베제



유산과 죽음 (1960년대)

밀수, 공갈, 마약 밀매에 걸친 비토 제노베제의 삶은 미국 마피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수감 중에도 그는 1969년 2월 14일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미국 연방 수감자 의료 센터에서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삶은 20세기 중반 미국 마피아의 무자비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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