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범죄/범죄자

콜롬보 패밀리를 만든 마피아 주세페 마글리오코

by 누사두아 2023. 12. 30.
반응형

 "Joe Malayak" 및 "Joe Evil Eye"로 불리우며 콜롬보 패밀리의 전신인 프로파치 패밀리의 보스로 악명을 떨쳤던 마피아

주세페 마글리오코

주세페 마글리오코

 

시칠리아에서의 어린 시절

주세페 마글리오코는 1898년 2월 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라마레 델 골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장기는 고국의 풍요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으로의 이민을 가게되었고 이민은 그를 조직 범죄의 영역으로 이끄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미국으로의 이민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마글리오코도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뉴욕에 정착한 그는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조직 범죄의 세계에 얽히게 되었고, 이는 그의 미래 대부분을 결정짓게 될 마피아 보스의 시작이었다.

프로파치 범죄 조직에서 부상

마글리오코는 프로파치 범죄 조직 내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조셉 프로파치의 지도 아래 조직 내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는 이후 미국 마피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차 콜롬보 전쟁

1961년 조셉 프로파치의 죽음은 마피아 내부의 권력 투쟁을 촉발시켰고, 이는 제1차 콜롬보 전쟁으로 이어졌다. 마글리오코는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잡았지만, 조셉 보난노의 열망과 충돌하면서 복잡한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

중년의 마글리오코



"바나나 분할" 음모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셉 보난노와 함께 마글리오코는 "바나나 분할" 음모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담한 계획은 카를로 감비노, 토마스 루체세, 스테파노 마가디노 등 라이벌 마피아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음모가 발각되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마피아 역사상 격동의 시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 되었다.

위원회의 개입

내부 분쟁이 격화되자 미국 마피아의 통치 기구인 위원회는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개입했다. 마글리오코는 프로파치 가문의 지도자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조셉 콜롬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위원회의 개입으로 제1차 콜롬보 전쟁은 종결되었지만 미국 마피아의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흔적을 남겼다.

 

말년의 마글리오코



어둠과 죽음 속에서의 삶

지도부에서 해임된 후 마글리오코는 마피아 활동의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남은 여생을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살다가  1963년 12월 28일, 주세페 마글리오코는 7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반응형